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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엔저' 日의 저가 공세…철강·車업계 비상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0 16:58

수정 2023.11.20 16:58

(자료사진) /뉴스1 /사진=뉴스1
(자료사진) /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일본 엔화 가치가 33년 만에 최저치 경신을 앞두면서 국내 산업계에 복병으로 떠올랐다. 철강·자동차·전자부품 등 주요 업종에서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하락 및 실적 타격이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엔저 업은 日 공세에 시름하는 철강·전자부품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엔저 현상 심화로 일본 기업과 경쟁 강도가 높거나 기술 수준이 비슷한 주요 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

원·엔 재정환율은 이날 종가 기준 100엔당 865.83원을 기록했다. 지난 16일(856.80원)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친 2008년 1월 10일(854.31원) 이후 15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이 금리를 올린 것과 달리 일본 중앙은행(BOJ)은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 타개를 위해 초저금리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엔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에선 철강 업종이 엔저 심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은 '역대급 엔저'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 열연코일, 중후판 등 철강재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국내 철강 고객사들도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가격 부담이 크게 낮아진 일본산 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은 한국 철강재 수입 규모의 35% 가량을 차지해 중국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수입국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누적 일본산 철강 수입 규모는 434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03만t)보다 약 31만t(8%) 가량 증가했다.

한국 철강업계의 글로벌 수출 경쟁력 하락도 불가피하다. 일본은 동남아·유럽·중동 등에서 강관, 열연, 후판, 판재, 봉형강 등 주요 철강 제품군에서 우리나라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의 올해 3·4분기 철강 부문 영업이익은 853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6.5% 감소했다.

TV·스마트폰·가전·자동차 등 전자제품 회로에 안정적 전류 흐름을 제어하는 부품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생산하는 삼성전기도 엔저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기(24%)는 무라타(34%)에 이은 MLCC 업계 2위다. 삼성전기를 제외하면 무라타, 다이요유덴, TDK 등 일본 기업들이 MLCC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구조다. 일본 기업들이 엔저로 인한 가격 우위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도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평균판매가격(ASP)을 따라 낮출 수밖에 없어 실적 방어에 애를 먹고 있다.

車·반도체도 엔저 심화 경보령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에 비해 시장지배력이 낮은 한국 자동차 산업도 엔저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 한일간 자동차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엔화 약세로 인한 일본 자동차의 상대적 가격 하락 효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이 우위를 점한 전기차에 비해 양국간 기술 차별화 수준이 낮은 내연기관차를 중심으로 일본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엔화 약세 시기였던 2013~2015년 일본의 자동차 수출 실적은 2012년 7조7000억엔에서 2015년 10조4000억엔까지 확대됐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끌고 있는 반도체산업은 한일간 수출경합도가 낮아 제한적 영향이 예상된다. 다만, 엔저 현상 심화로 한·일 기업간 실적 차별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엔저 현상 심화로 낸드플래시 업계 2위 일본 키옥시아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을 내다봤다. 비교적 가격탄력성이 높은 소비자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을 중심으로 키옥시아 제품 판매량 확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엔저 현상이 심화될 경우 우리나라 전반적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국무역협회는 엔·달러 실질 환율이 10% 상승할 시 국내 수출물량을 0.86% 감소시키는 것으로 추정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대비 원화 가치의 상대적 고평가 현상이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 펀더멘털 등을 고려하면 추가 하락보다 900원대로 재차 수렴할 것"이라고 전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김영권 홍요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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