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부 믿고 백억 쏟았는데… 종이빨대업체 희망 앗아갔다 [현장르포]

강명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19 17:58

수정 2023.11.19 17:58

일회용품 규제 백지화에 위기감 도는 종이빨대업계
"공장 멈추고 직원 자를일만 남아"
오락가락 환경정책에 망연자실
생산 3배 늘렸는데 계약 30% ↓... 재고 4000만개 창고 빽빽이 쌓여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최광현 대표가 공장라인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최광현 대표가 공장라인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 창고동에 일회용품 규제 계도기간 종료에 맞춰 준비한 재고 4000여개가 쌓여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 창고동에 일회용품 규제 계도기간 종료에 맞춰 준비한 재고 4000여개가 쌓여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의 약 330㎡(100평) 규모의 공장 내부에는 빨대제조 라인 12개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원재료인 펄프를 돌돌 말아 긴 빨대를 만들어 잘라낸 뒤 개별 포장하는 자동화 생산 라인의 소리가 요란했지만 공장 한켠에는 2개의 라인이 멈춰 있었다.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최광현 대표는 "종이빨대 의무 사용이 예정대로 시행됐다면 공장을 전부 가동 했겠지만 정책이 중단되면서 품질 향상 등의 명분으로 정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오는 24일 일회용품 규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생산설비를 대거 늘린 이 업체는 갑작스러운 환경부 발표에 망연자실했다. 규제 시행을 예상해 생산 규모를 3배 이상 늘렸지만 정 반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매월 4000만개의 종이빨대를 생산하던 설비를 월 1억4000만개 수준으로 늘린 상태다. 지난 7일 환경부는 일회용품 규제 계도를 연장하는 일회용품 관리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계도 기간을 1년으로 정했지만 이번에는 일정을 언급하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연기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최 대표는 "계도기간 종료를 대비해 직접 투자로만 30억원을 투입했고 연구개발, 직원 교육 등을 합치면 총 100억원을 투자했다"며 "예정대로면 24일 시행에 맞춰 준비한 재고 4000만개가 물류로 나갔어야 하는데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다"고 했다. 생산동 맞은편의 창고에는 빨대 5000개가 들어있는 박스가 8개 층으로 빽빽이 쌓여 있었다. 그는 "소량 안전재고를 제외하면 재고를 쌓아두지 않는 게 철칙이다. 빨대를 만들어 2~3일 내로 다 출고시키는데 한 달 가까이 재고를 쌓아놓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계도 연장기간이 길어질수록 업계는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고 토로했다. 리앤비는 규제가 전면 시행되면 매출 3억개에서 5배 늘어난 15억개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현 상황에선 적자를 예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주요 고객인 리앤비 고객사 9곳 중 1곳은 플라스틱 빨대로 바꾸기로 했고 4곳은 종이빨대 구매 물량을 줄였다. 3곳은 플라스틱 빨대와 병용하기로 했다. 전체 계약 물량 약 30% 줄었다.

최 대표는 "고정비는 크게 차이가 없는데 판로가 막히면 방법이 없다. 이제 막 설비를 확충하고 영업을 시작하던 중소업체는 더 막막하다"며 "당장은 그 물량이 우리에게 넘어오면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다시 우리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을 맡길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는 사라지고 값싸지만 품질을 담보할 수 없는 수입산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앤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내 최대 종이빨대 구매처인 스타벅스가 고객사중 하나다. 리앤비와 마찬가지로 2018년 종이빨대 시장에 뛰어든 가온누리는 스타벅스 납품 물량이 없어 어려움이 더 크다고 했다.
이상훈 누리다온 이사는 "종이빨대만 사용하는 스타벅스나 고급 프랜차이즈와 달리 대부분의 중저가 브랜드는 구매해 놓은 플라스틱 빨대를 소진하느라 종이빨대를 구매하지 않았다"며 "적자구조를 버텨온 대부분 업체는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구매처들과 논의하는 단계였는데 이번 발표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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