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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12.12재연 아닌 인간군상 담고 싶었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0 18:44

수정 2023.11.21 09:27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제5공화국 출발점 된 12·12사태
알려지지 않은 9시간의 갈등 담아
"권력쟁취, 승리로 그려질까 경계"
12·12를 영화 소재로 다룬 '서울의 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12·12를 영화 소재로 다룬 '서울의 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남동에 살던 19살 무렵) 나는 겨울밤의 찬 공기를 조용히 삼키면서 20분이 넘도록 총성을 들었다. 훗날 '12·12 군사반란'으로 자세한 내막이 알려졌을 때 나는 오래된 의혹이 해소됨과 동시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저렇게 쉽게 권력을 빼앗겨? 그것도 하룻밤 만에??"(김성수 감독 연출의 변 중에서)

20일 실시간 예매율 46.5%를 기록한 영화 '서울의 봄'이 12·12를 스크린에 옮긴 첫 영화로 화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선출된지 1주일도 안된 시점에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의 일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주도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바로 제5공화국의 시작이었다.

'서울의 봄'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모델로 한 전두광(황정민)과 군사반란에 맞서 진압군을 지휘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모티브로 한 이태신(정우성)을 중심으로 일촉즉발의 9시간을 담았다.
청춘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와 한국사회 풍경을 담은 '감기' '아수라'로 유명한 김성수 감독(사진)은 이번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고 "마치 운명처럼 느꼈다"고 돌이켰다.

■"12.12 군사반란 재현 아닌 인간군상 담고파"

'서울의 봄'은 실화와 기본 뼈대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 안 인물들의 성격과 구체적 행적은 극화됐다. 실제로 회고록과 평전, 기사 등 자료는 많이 남아있으나 정작 군사반란이 본격 전개된 9시간 동안, 반란군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남아있지 않다. 김 감독은 "드라마 '제5공화국'처럼 12·12를 재현하기보다 그곳에 모인 인간군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반란군이 권력을 잡은 승리의 기록이라 행여나 악당이 폼나게 그려질까 우려돼 이를 경계했다"고 부연했다.

누구나 다 아는 실존인물의 이름을 바꾼 것은 "다큐를 찍는 게 아니고, 이 사건의 맥락 안에 있는 인물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인물의 버릇, 외향, 말투를 재현할 의도는 없었다. 다만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은 우리 이야기 안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핵심 인물이자 영화의 출발점이고, 그 역사가 이 영화로 넘어가는 발판과 같은 캐릭터라 실존인물의 외피를 차용했다. 외모적으론 대머리가 완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두광은 탐욕의 화신이자 굶주린 늑대 무리의 왕과 같은 인물이다. 황정민은 영화 '아수라'에서 함께 작업했는데 불덩이와 같았다. 황정민의 역량과 에너지, 힘을 믿었다. 황정민도 악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관객이 마치 그때 그 상황을, 현장에서 목도하는 것처럼 느끼길 바랐다. 전달하고픈 주제나 사건의 뼈대는 벗어나지 않되, 역사학자가 아닌 스토리텔러로서 재미있고 속도감 있게 만들고 싶었다"고도 했다.

■반란군에 맞선 이태신 "올곧은 선비 같은 사람"

반면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실존인물과 매칭하기 어렵다. '제5공화국'을 기억하는 사람에겐 "반란군 놈 새끼! 전차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는 강렬한 대사로 기억할 터. 하지만 김 감독은 강한 캐릭터와 강한 캐릭터가 맞붙길 바라지 않았다.

"우리시대 아버지 중에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서도 신념을 지키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책임감은 대쪽 같은 아버지도 있다. 전두광이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거운 탐욕 덩어리라면, 이태신은 올곧은 선비 같은 사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길 바랐다. 관객이 이태신을 통해 그때의 상황과 역사를 정확하게 보길 바랐다."

김 감독은 진압군이 비록 패배했지만, 그들의 저항이 무의미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진압군이 맞섰기 때문에 반란군의 내란죄와 반란죄가 입증된 것"이라며 "아무도 맞서지 않았다면 반란군이 승리자로 영원히 기록됐을 수 있다"고 짚었다.

"우리가 읽는 역사는 역사의 조각들이다. 역사가가 논리적으로 기술하나 실제론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일은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또 훌륭한 사람들의 합리적 결정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일에 개입한 사람들의 인성과 가치관, 세계관이 어우러져 전개된다. 그 기운과 움직임들이 모여 역사적 소용돌이가 되는 것 같다."

군가 '전선을 간다'는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며 관객의 마음을 붙든다. 그는 "군가 중 유일하게 좋아했던 노래"라며 "전투를 독려하는 다른 노래와 달리 전쟁의 허망함을 알지만 계속 전진하라는 내용이 문학적이고 사실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대사가 있는 배역만 60여명에 달한다. 이에 자막을 적극 활용했다.
'남산의 부장들'을 만든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했다. 22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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