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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의 아침밥' 상인에겐 '비수'?..학생들은 반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3 13:03

수정 2023.11.23 13:03

지난 14일 고려대 '천원의 아침밥' 현장에서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지난 14일 고려대 '천원의 아침밥' 현장에서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학교가 학생들에게 베푼다는 취지는 좋지만 자영업자로선 달갑지 않죠. 매출에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근 한 분식집에서 근무하는 60대 이모씨가 '천원의 아침밥'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천원의 아침밥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단돈 1000원에 제공하는 복지 사업이다. 이씨는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는 학생이 늘수록 대학가 상권의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씨가 일하는 분식집은 오전 손님이 지난해보다 줄었다고 전해진다.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상인들과 대조적이다. 지속된 물가 상승으로 아침밥을 챙기기 부담스러웠는데, 천원의 아침밥 덕에 외식 비용을 줄였다는 목소리다. 일부 대학생들은 천원의 아침밥이 점심밥, 저녁밥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고려대 '천원의 아침밥' 메뉴로는 소세지 볶음과 김치찌개, 김치 등이 나왔다. 사진=윤홍집 기자
지난 14일 고려대 '천원의 아침밥' 메뉴로는 소세지 볶음과 김치찌개, 김치 등이 나왔다. 사진=윤홍집 기자

대학생 90% "천원의 아침밥 긍정적"
23일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 대학 40여곳이 올해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들은 교내 여건과 학생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학생식당 비용을 1000원으로 인하하거나, 김밥·주먹밥 등 간편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북대의 경우 지난달 중순부터 저녁 학식을 2000원에 제공하는 '2000원의 저녁밥' 사업을 실시해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비는 학교 예산과 정부·지자체의 지원금, 기부금 등으로 마련된다. 통상적으로 단가가 5000~6000원에 이르는 아침밥을 1000원에 제공해야 하다 보니 대학이 감수해야 하는 부담은 적지 않다. 그러나 천원의 아침밥이 대학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 대학으로선 안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천원의 아침밥 사업 참여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48.7%는 '만족한다', 43.4%는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두 응답을 합하면 긍정적인 답변이 90%를 넘기는 셈이다.

지난 14일 방문한 고려대에선 천원의 아침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려대 천원의 아침밥은 인원수에 제한이 없어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사례로 꼽힌다.

천원의 아침밥으로 매일 아침 식사를 챙기고 있다는 고려대 재학생 이청우씨(21)는 "6000원인 점심과 동일한 퀄리티의 아침을 1000원에 먹을 수 있는데 얼마나 좋나"라며 "밖에서 밥을 먹으면 한끼에 1만원 정도가 들어서 외부 식당에선 밥을 거의 사 먹지 않는다. 하루 세끼를 모두 학식으로 때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보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라며 "나만해도 최근에 과외가 끊겨서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다. 한잔에 5000원이 넘는 커피는 남의 일이고 외식은 일주일에 한번밖에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천원의 아침밥 덕에 아침밥 먹는 모임까지 하고 있다는 서선우씨(23)는 "자취할 때는 밥을 만드는 게 힘들고 식재료나 외식 비용도 비싸서 아침밥이 사치라고 느껴졌다"면서 "지금은 1교시가 있는 날에 천원의 아침밥을 자주 먹는다. 외부 식당은 잘 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고려대에 따르면 지난 1학기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한 학생은 6만여명에 달한다. 이를 위해 정부·지자체·동문 등의 지원을 받아 1학기에만 2억2000만원을 집행했다. 고려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천원의 아침밥을 운영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 상권 모습. 사진=윤홍집 기자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 상권 모습. 사진=윤홍집 기자

"천원의 아침밥, 대학 상권에 악영향"
대학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선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환영하기는 어렵다.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는 학생이 많아질수록 아침 손님은 감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설령 줄어드는 매출이 크지 않더라도 불경기로 인해 손님 한명 한명이 귀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고려대 인근 분식집에서 일하는 이씨는 "지난해 같으면 아침에도 손님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요즘은 자리가 텅 비고 있다"라며 "학교에서 아침밥을 1000원에 제공한다면 우린 손님 10명 올 게 5~6명으로 줄어든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내에 위치한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양모씨(22)는 "전에는 아침 시간대에 컵라면이나 김밥을 사 먹는 손님이 꽤 있었는데 최근에 급격히 줄어든 느낌"이라며 "아무래도 천원의 아침밥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천원의 아침밥 운영 규모가 적은 대학의 경우에는 주변 상권이 받는 영향도 그만큼 크지 않아 보였다. 성신여대는 지난 5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각 200식씩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하고 있다. 성신여대 인근 상인들은 천원의 아침밥에 대해 모르거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다만 성신여대는 천원의 아침밥으로 김밥이나 주먹밥 같은 간편식을 제공하는데, 김밥을 주로 판매하는 분식점 업주들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성신여대는 방학기간을 제외하고 11월까지 총 7400식의 천원의 아침밥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모씨(73)는 "내가 학생이라고 해도 천원에 김밥을 사 먹을 수 있는 날에는 우리집에 오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 3~4배나 많은 돈을 주고 같은 메뉴를 사 먹으려 하겠나"라고 되물었다.

천원의 아침밥이 점심이나 저녁까지 확대되는 것에 대해선 자영업자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대학가 상권은 점심이나 저녁 매출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점심·저녁까지 천원의 아침밥이 확대된다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성신여대 인근 분식집 관계자 김모씨(65)는 "천원의 아침밥을 확대하는 것은 대학가 상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복지가 돌아가는 건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코로나 때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라고 한숨을 쉬었다.

식재료값 인상에 따라 불가피하게 메뉴 가격을 올리면서 대학가 상권이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푸념도 있었다.

성신여대 앞에서 23년째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50대 박모씨는 "우리 가게는 대학가 상권에 속해있지만 이제 주요 타깃이 대학생이 아니게 됐다"라며 "지난해 7000원 하던 샌드위치가 9000원이 돼버리니 학생들이 어디 사 먹을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가격을 올리고 싶어서 올린 게 아니다"라며 "마요네즈만 하더라도 2.7㎏에 9900원하던게 1만6300원까지 올랐는데 어떻게 가격을 안 올리나. 울며겨자 먹기로 가격 올려봐야 이윤은 적고 손님만 줄어든다"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인근에 위치한 분식집에는 오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사진=윤홍집 기자.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인근에 위치한 분식집에는 오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사진=윤홍집 기자.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