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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의 정책진단] 저출산 대책 새로 짜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3 18:33

수정 2023.11.23 18:33

기존 보육중심 대책보다
일가정양립 대책 비중을
RCT 사전평가 활용해야
[안종범의 정책진단] 저출산 대책 새로 짜자
경제와 문화 강국으로 우리 역사 이래 세계적 위상이 최고에 달하고 있는 지금, 안타깝게도 부정적 의미로 세계적 기록을 세우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고 노인 빈곤율이다. 특히 2022년 0.78을 기록한 합계출산율은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1.3 미만의 출산율을 지난 20년간 기록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1.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지금 온 국민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저출산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지금껏 내놓은 대책들이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이 가장 심각했다.
2017년 이후 지난 5년간 저출산예산은 24조1150억원에서 51조7000억원으로 2.14배나 증가하는 동안 출산율은 1.05에서 0.78로 급격히 떨어졌다.

그동안 저출산대책은 보육지원 위주로 이루어졌다.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보육비 지원대상과 지원금액 확대를 시도해 보육예산이 주거를 제외한 저출산예산의 반이 넘었다. 각 정부부처도 서로 저출산대책을 내놓는 경쟁을 하기도 한다. 저출산이 문제이니 대책을 내놓으라는 대통령과 국회의 요구에 각 부처는 기존 대책의 실효성 평가 없이 그저 확대하거나 새로운 유사 대책을 내놓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이제 저출산대책은 원점에서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대책을 만들기 전에 우선 원인분석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왜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늦추고 또 꺼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1993년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25세였고, 초산연령은 26.2세였다. 그런데 2021년에는 각각 31.1세와 32.6세로 급격히 높아졌다. 또한 초혼과 초산의 간격이 1세 정도에서 1.5세로 더 벌어지면서, 결혼도 늦추지만 결혼 후 첫아이 출산도 될 수 있으면 늦추고 있는 실정이다.

초혼과 초산 연령 상승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상승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30~34세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2017년 66.2%에서 2022년 75.0%로, 5년 만에 8.8%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일·가정 양립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는 젊은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육중심 대책보다 취업모의 출산장려를 위한 돌봄과 일·가정 양립 대책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문화적 인식변화도 분석해야 한다. 결혼을 꺼리게 되는 주된 요인으로 교육비와 같이 자녀 키우는 비용이 과다하고, 집값이 감당하기 힘들며, 여성의 경우 직장에서 출산에 따라 경력단절이 우려된다는 것들 이외에도 독립적 미혼생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내년에 '인구정책평가센터'를 설치해 저출산대책 평가를 제대로 한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적인 저출산 원인 분석과 기존 대책에 대한 평가, 나아가 새로운 대책의 사전평가를 기대해 본다. 과학적 사전평가를 위해 우리도 이제 RCT(무작위대조시험·Randomized Controlled Test)와 같은 사회적 실험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RCT는 특정 정책 프로그램의 대상자들을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하나는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토록 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게 한다. 그런 뒤 특정 정책 시행에 따라 참여자와 비참여자 간의 행동변화를 관측해 해당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의 효과를 사전에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RCT는 주로 신약개발 효과 등 의료분야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주요 선진국들은 이를 오래전부터 사회정책 프로그램 효과를 평가하는 데 활용해 오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저출산정책에 대한 사전평가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동안 수많은 저출산대책의 시행착오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민정책 또한 이러한 과학적 사전평가 작업이 요구된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前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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