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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고의 성능저하 집단소송...외국과 한국 판결 다른 이유는[최우석 기자의 로이슈]

최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9 16:36

수정 2023.11.29 16:36

2017.3.2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진=뉴스1
2017.3.2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애플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서 고의로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떨어뜨렸다며 소비자들이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미국 등 해외와는 달리 1심에서 패소했다. 똑같은 논란이었는데 미국, 칠레 등 해외에선 소비자들에게 합의금이 지급된 반면, 국내 법원은 애플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지숙)는 지난 2월 소비자 9850명이 애플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일명 '배터리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병합된 사건까지 더하면 원고는 무려 6만여명, 청구 금액은 127억원에 달하는 대형 소송전이다.

애플, 외국에선 합의…수천억 지급했는데
애플을 향한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은 해외 곳곳에서 진행됐다. 미국에선 대규모 소비자 소송이 진행됐고, 캘리포니아·애리조나 등 34개 주 정부도 애플을 상대로 행정적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애플은 미국에서 지난 2020년 3월 구형 아이폰 사용자 한 명당 25달러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합의금은 최대 5억 달러, 한화 약 6000억원 규모다. 칠레에서도 지난 2022년 4월 소비자 약 15만 명에게 총 25억 페소, 한화 약 38억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애플이 고의 성능 저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국가에서 분쟁을 조기 종결시키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경영 판단에 따른 결과라고 법조계는 해석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필요

그렇다면 국내 법원이 소비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핵심 쟁점은 무엇일까. 재판부는 문제가 된 성능 저하 자체를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성능 저하는 사용자의 주관적 느낌이나 생각을 기재한 것에 불과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봤다.

또 소비자들이 업데이트 이후 아이폰 성능 저하를 주장한 실험에 대해서도 " 이 실험이 어떤 조건에서 진행된 것인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저하된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객관적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즉, 아이폰 업데이트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단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법조계는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디스커버리 제도 부재 등이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비난가능성이 큰 불법행위자에게 실제 손해액을 넘어서는 액수의 손해를 가하도록 하는 제도로 소송적 측면에서 기업에 많은 부담이 된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상대방 등으로부터 소송에 관련된 정보를 얻거나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진행되는 증거수집 절차로 일종의 증거제시제도인데, 소송과정에서 밝히고 싶지 않은 기업의 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기업들에게는 역시 부담이다. 미국 등에서 집단소송의 판결은 원고 뿐만 아니라 소송제기를 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도 효력이 발생하는 반면 우리나라 민사소송제도는 소송의 당사자만 판결의 효력이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법조계는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미래로 이은성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제도가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합의보다 소송으로 가는 것이 다소 유리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wschoi@fnnews.com 최우석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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