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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가업 승계 가로막는 세계 최고 상속·증여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9 18:36

수정 2023.11.29 18:36

상속=부 대물림, 낡은 구시대 사고
승계 활성화 지원법안 통과시켜야
2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기업승계 세법개정안 국회 통과 촉구 성명서' 발표 자리에서 송치영 중기중앙회 기업승계활성화위원장이 답하고 있다. /사진=중기중앙회 제공
2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기업승계 세법개정안 국회 통과 촉구 성명서' 발표 자리에서 송치영 중기중앙회 기업승계활성화위원장이 답하고 있다. /사진=중기중앙회 제공
높은 상속세율과 증여세율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기 52%가 세금 폭탄을 피해 폐업이나 회사 매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의 증여·상속세율은 업을 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혹하다는 지적이 사실인 것이다. 현실을 반영해 가업 승계 시 저율 과세 구간을 확대하는 내용의 정부 세법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진척이 없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 승계 활성화를 지원하는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이대로 가면 21대 국회에서 세법 개편 자체가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30년 이상 중기를 운영하는 최고경영자(CEO) 중 80% 이상이 60대이고, 30% 이상은 70대라고 한다. 창업주들의 고령화 현실을 볼 때 약탈적 세금 체계는 하루빨리 고쳐야 업의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 국회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기업주들은 힘들게 키워온 알짜배기 기업의 존망을 걱정하고 있다.

업계는 기업 승계를 위한 주식 증여 시 저율 증여세를 과세하는 금액 한도를 현행 60억원에서 300억원까지 확대할 것을 요구한다. 증여세를 나눠 낼 수 있는 연부연납 기간도 현행 5년에서 20년으로 늘려달라는 게 중기 바람이다. 현행법상 상속세의 경우 연부연납 기간이 20년까지 허용되고 있다. 중기는 증여세 특례를 적용받은 기업에 대해 일정 기간 중분류와 소분류 업종 변경을 제한하는 시행령 개정도 촉구한다. 해외 주요국들의 현황을 참고할 때 과할 것 없는 요구들이다.

우리나라 증여세, 상속세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총조세수입 중 상속· 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2.42%다. OECD 국가 평균의 6배에 육박한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 15%보다 3배 이상 높다. 가산세를 포함할 경우 실질 부담세율은 최대 60%까지 올라간다. 상속세를 내려고 기업을 팔아야 할 지경이다.

가히 세금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웨덴 등 14개 OECD 회원국에선 아예 상속세가 없다. 과도한 세율은 상속을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가업을 이어 기업을 성장시키며 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업력이 오래된 장수기업의 경제 기여도를 보면 중앙회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10년 미만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평균 5500만원이지만 30년이 넘는 기업의 평균 법인세 납부액은 17억3800만원이다. 32배나 차이가 난다. 고용 규모를 봐도 30년 이상 된 기업이 10년 미만 기업보다 10배 이상 많다. 기업이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아야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부자 감세, 부의 대물림이란 낡은 이념의 틀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기업 활동을 위해 상속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하나둘 손을 들고 있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기업 발목을 잡는 시대역행적인 세제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조속히 처리하고 불합리한 제도 전체도 손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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