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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불과 원자폭탄, 그리고 실손보험[영화in 보험산책]

뉴스1

입력 2023.12.03 09:28

수정 2023.12.03 09:28

오펜하이머 스틸컷/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오펜하이머 포스터


(서울=뉴스1) 박재찬 기자 =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원작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과학자들을 모아 원자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전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원자폭탄이 만들어가는 과정,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원자력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 청문회까지 세 가지 시점이 교차된다.

원작의 제목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티탄 신족으로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준 신이다. 제우스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바위산에 쇠사슬로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인류에게 원자폭탄이라는 불을 준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로 묘사한 것이다.

오펜하이머도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구절을 빌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고 말한다.

보험업계에도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만큼이나 탄생이 후회되는 상품이 있다. 바로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이다.

우리나라 초대 국회는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국민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고,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됐다. 이후 12년 만인 1989년,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단 기간 전 국민의료보험을 달성했다.

문제는 모든 국민에게 충분한 의료를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재정이 부족했다. 또 새로운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진료도 급증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크게 높아졌다.

결국,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민간의료보험제도’ 도입을 결정했고, 2003년 ‘1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됐다.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의 책임과 의무를 민간 보험사로 확대한 것.

이렇게 탄생한 실손보험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실손보험 최근 적자규모는 2017년과 2018년 1조2000억원, 2019년 2조5000억원, 2020년 2조5000억원, 2021년 2조8000억원, 지난해 1조5000억원으로 지난 6년간 적자액만 11조7000억원이다. 해마다 커지는 실손보험 적자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국가가 보험사에 떠맡긴 의료보장의 책임이 또 다시 국민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실손보험 재정악화의 중심에는 일부 의료기관의 비급여 오용과 과잉진료가 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로 의사 재량에 따라 진료비가 매겨지고, 의료기술의 빠른 발달로 매년 새로운 비급여 항목들이 쏟아져 나왔다.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실손보험이 보장한다. 이로 인해 일부 의료기관들은 비급여 진료비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고, 실손보험을 보유한 환자를 상대로 수익을 무제한 뽑아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일부 보험소비자들의 초음파 및 MRI 검사, 도수치료, 각종 시술 및 수술, 허위입원 등 과도한 의료 쇼핑도 실손보험 적자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의료기관에서 필요 이상의 비급여 서비스를 여러 차례 받고 실손보험으로 비싼 진료비를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보험소비자의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서는 비급여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급여 진료 가격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불확실해졌고, 이로 인해 과잉진료와 의료쇼핑도 만연해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의료계의 비급여 오용 및 과잉진료와 보험소비자의 의료쇼핑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의료행위를 가능하게 한 실손보험의 상품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과 보험사들도 실손보험의 구조적 문제에 공감하며 갱신 주기를 줄이고 자기부담금 높이는 방식으로 여러 차례 상품개선에 나섰고, 현재 실손보험은 1세대부터 4세대까지 출시됐지만, 정상화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러한 실손보험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장성 확대나 축소 같은 상품개선이 아니라 상품의 근본적인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 오펜하이머와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탄 투하를 결정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남겼다. 실손보험은 수년째 쌓인 심각한 적자로 위기에 빠졌다. 모든 국민들이 꼭 필요할 때 ‘돈’ 걱정 안하고 충분한 의료를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계, 보험소비자, 보험사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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