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관객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영화관…'홀드백'이 해법 될까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04 18:09

수정 2023.12.04 18:33

극장-IPTV-OTT-TV로 이어지는
작품 유통 시스템 사실상 붕괴
넷플릭스 직행·동시개봉 잇따라
"극장산업 보호해야" 목소리에
문체부 '홀드백 제도화' 움직임
일정기간 상영 후 OTT행 허용
관람수요 회복 지원한다는 취지
올 상반기 전체 영화관객수는 5839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1억99만명)의 57.8%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영화산업의 근간인 국내 극장산업 보호를 위해 홀드백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공식 통계 사상 최저 관객수를 기록했던 지난 2021년 1월 한 극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올 상반기 전체 영화관객수는 5839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1억99만명)의 57.8%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영화산업의 근간인 국내 극장산업 보호를 위해 홀드백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공식 통계 사상 최저 관객수를 기록했던 지난 2021년 1월 한 극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영화 '서울의 봄'이 겨울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영화관 관객수는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홀드백(holdback)'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극장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전체 영화 관객수는 5839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1억99만명)의 57.8%에 불과했다. 문제는 극장 매출이 영화산업 전체 매출의 70~80%를 차지했기 때문에 극장의 침체가 영화산업의 침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너진 홀드백 관행 "영화업계에 부정적 영향"

홀드백이란 한 편의 영화가 이전 유통 창구에서 다음 창구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말한다. 영화는 통상 극장-IPTV-OTT-TV 채널 순으로 유통됐다. 하지만 팬데믹 여파로 홀드백 기간이 단축됐을 뿐 아니라 '한산:용의 출현' '비상선언' 같이 극장 개봉 후 글로벌 OTT로 직행하거나 '사냥의 시간' '승리호' '독전2'처럼 극장을 건너뛰고 OTT로 공개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코로나 초기만 해도 불가피한, 일시적 현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자 영화산업 정상화를 위해 홀드백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OTT 직행이 제작사나 투자배급사 입장에선 투자금 회수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영화산업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OTT는 영화를 건별로 구매하는 TVOD와 달리 월 구독료만 내면 여러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SVOD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극장은 가격경쟁력에서 OTT에 밀린다. 제작·투자배급사도 OTT 직행을 통해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제작비의 5~10% 수익을 보장받는 수준이다. 영화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전장치로서 가치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극장이 정상화돼 있다면 기존 관행대로 극장-IPTV-OTT 순으로 순차 공개되는 것이 이상적"이라면서도 달라진 시장 환경을 거스르기는 힘들다고 언급했다. "영화마다 손익분기점이 있기 때문에 극장에서 예전보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부가시장에서라도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영화가 OTT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홀드백 단축과 OTT 직행으로 IPTV 등 부가판권시장이 축소되며 개별 영화의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유료 VOD 매출은 2018년 6590억원에서 2021년 5299억원으로 줄었는데, 2021년 VOD 매출 하락률은 전년대비 15.33%에 달했다. 연간 70~80편의 영화를 보는 한 영화 마니아는 "요즘 극장서도 볼 영화가 없지만 IPTV는 그야말로 모텔 영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영화산업 근간인 극장산업 보호 위한 안전장치 필요"

홀드백 시스템 붕괴 문제는 영화계 주요 현안으로 손꼽힌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0월 취임 후 첫 정책 발표에서 "미개봉 영화 개봉 촉진 펀드를 조성하고, 업계 내 자율적인 홀드백 협약, 준수를 지원해 영화관 관람 수요 회복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날 정책 발표와 관련해 "모태펀드 투자작 대상에 한해 홀드백 준수 의무화를 추진하기로 했던데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은 있다"며 반색했다.

홀드백을 어떻게 재정비할지는 현재 영화진흥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영진위 한 관계자는 "극장, 제작, 투자·배급, IPTV 등 업계 관계자들이 홀드백 재정비에 대한 의견은 같이 하지만,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데 이견이 있기 때문에 현재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자국 문화 보호를 우선시하는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홀드백을 법제화한 나라다. 기본적으로 개봉일로부터 4개월간 다른 비디오 형태의 이용이 불가능하고, SVOD의 경우 극장 상영 후 무려 15개월 후에나 서비스가 가능하다.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영화는 영상 콘텐츠의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콘텐츠로서 상징성이 있다"며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영화산업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지만 법적·제도적 보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영화산업이 무너지면 우수 인력이 이탈하고 더 이상 뛰어난 감독이 배출되지 못하면 오스카의 영광도 찾기 힘들 것"이라며 "영화산업이 무너지면, 또 K콘텐츠 열풍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흐름을 거스를 순 없겠지만 최소한의 규정을 둬 (영화산업의 근간인) 극장산업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영화상영업 관계자는 "극장을 구심점으로 형성돼온 영화산업 선순환 시스템에 대한 보호가 필수적"이라며 "국내 우수 영화 인재의 양성, 지식재산권(IP) 및 판권의 귀속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한편 '홀드백 법제화' 토론회가 오는 8일 국회에서 열린다.
한국영화관산업협회 김진선 회장은 "투자-제작-배급-상영이 한 몸처럼 이뤄진 영화업계가 홀드백 준수를 통해 상생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이번 토론회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져 위기의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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