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ELS 불판 이슈' 돈 굴리던 은행, 요양병원과 손잡고 고객 재산 관리한다

김나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10 15:34

수정 2023.12.10 18:42

H지수 ELS로 고위험·고수익으로 불완전판매 논란
무리한 재산 불리기보다 종합적 관리하는 非금전신탁 급물살
당정, 지난달 법안 발의해 신탁업 혁신방안 추진
초고령사회 대비×비이자수익×사회적 역할 확대
銀에서도 '가족돌봄' '가업승계' 등 상품 개발
사진은 지난 2월 국내 4대 은행의 간판. 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2월 국내 4대 은행의 간판. 연합뉴스.
4대 시중은행 금전신탁 이익
4대 시중은행 금전신탁 이익(단위:억원)
2023년 3분기 2022년 3분기 2022년 말 2021년 말
KB국민 22,625 7,558 11,550 14,315
신한 18,323 6,514 10,181 10,101
하나 18,082 5,596 9,867 5,833
우리 14,992 5,808 8,801 6,824
합계 74,023 25,477 40,399 37,072
(출처: 각 사 경영공시.)
4대 시중은행 재산신탁 이익
4대 시중은행 재산신탁 이익(단위: 억원)
2023년 3분기 2022년 3분기 2022년 말 2021년 말
KB국민 1 144 145 280
신한 40 25 37 49
하나 5 200 253 166
우리 4 9 13 20
합계 50 377 448 515
(출처: 각 사 경영공시. )
[파이낸셜뉴스]
#.1인 가구 50대 여성 박모씨는 본인 유고 시 재산이 백혈병 환우와 관련된 의료 발전에 사용되기를 바란다. KB국민은행은 연세대학교 의료원을 기부처로 발굴해 추천했고 박씨는 사후수익자로 이곳을 지정했다. 박씨 아파트와 예금은 향후 연세대 의료원에 기부될 예정이다.

#.아내와 함께 시니어 요양시설에 거주 중인 퇴직 교수 정모씨는 평생 일궈온 재산을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지만 향후 주거비, 병원비에 필요한 비용을 몰라 주저하고 있었다. 요양시설을 통해 신한은행 유언대용신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본인과 배우자 사후 요양시설 입소 보증금을 자신이 몸 담았던 대학에 기부할 것을 약정했다.
은행권이 최근 홍콩 항셍중국기업펀드(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으로 불완전판매 논란 중심에 서면서 위의 사례와 같이 고객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방점을 찍은 비(非)금전신탁 사업이 탄력받고 있다.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층 비중 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위험·고수익 상품 판매보다는 비금융 전문기관과 손 잡고 고객 뜻에 맞게 재산이 관리되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여당에서도 이같은 방향성을 담은 신탁업 활성화 입법에 나섰다.

ELS로 비판받는 은행권.. 당정 '非금전신탁' 활성화 추진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이 비(非)금전신탁 활성화를 통해 전화위복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H지수 ELS 불완전판매 논란이 은행의 고위험 금전신탁 취급에 대한 '원점 재검토' 논의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을 찾는 금융 소비자들은 대부분이 '안정성향'인데 은행도 여기에 맞춰 상품을 취급하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기준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신탁업 인가회사의 수탁고는 특정금전신탁과 부동산신탁에 각각 45.5%(576조6000억원), 37%(469조원)가 집중돼 있다. 반면 유언 신탁 등을 포함한 불특정금전신탁이나, 한 번의 계약으로 여러 종류 재산에 대해 동시에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종합재산신탁 비중은 각각 1.2%(14조7000억원), 0.1%(7000억원)에 불과했다. 소비자의 수요를 보다 폭넓게 담은 신탁 취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정에서도 이에 적극적이다. 당정에서는 앞서 △초고령사회 등 인구구조 변화 △은행 사회적 역할 강화 △은행 비이자수익 확대라는 측면에서 신탁업 혁신을 강조해왔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은행은 비금융업 영위·투자가 제한돼 있고 수수료 증대도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 자산을 관리·증식하는 자산관리 서비스도 미흡하다"라며 "신탁 가능 재산 확대, 전문기관 위탁 허용 등 신탁업 혁신을 통해 고객 특성에 맞는 종합재산관리 서비스 출시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5년간 국내은행의 이자수익 비중은 88%로 미국(70%) 등 글로벌 은행에 비해 높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객 재산을 맡은 은행을 집사라고 한다면, 집사가 펀드 등 금융상품과 연계해 돈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관리를 하는 게 신탁업의 본질"이라며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서도, 요양기관과 연계해 향후 장례비를 관리하고 등 신탁에 들어가 있는 자금을 고객의 뜻에 맞게 활용하도록 해주는 게 신탁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신탁업 혁신 방안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지난달 29일 대표발의했다. 금융회사가 서비스 신탁 업무 일부를 위탁하면 병원과 법무법인, 세무법인 등 전문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은행이 채무와 담보 등 지금보다 넓은 범위의 재산을 수탁받아 노인 요양에 특화된 의료법인, 세제 및 법률 자문에 전문성이 있는 법무법인에 일부를 위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이 전문기관들과 연계해 금융소비자에게 '맞춤형 재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평소엔 재산관리, 사후엔 유언집행" 銀 종합솔루션 개발
은행권도 당정의 이같은 기조에 발맞춰 신탁업 혁신을 준비 중이다. 의료원과 후견 법인을 통해 신탁 사업 확장성을 키우고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질병과 치매 등으로 스스로 재산 관리가 어려운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 대학교, 종합병원, 기부단체와 연계로 인생 마무리를 돕는다는 사회 환원 역할도 있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은 위탁자 생전에 금전·부동산·유가증권 등 재산을 신탁하고 사후 미리 지정한 상속인에게 재산을 승계할 수 있도록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유언대용신탁인 'KB위대한유산신탁'을 취급 중이다. 위탁자가 사망해 반려동물을 돌보지 못할 때 은행에 자금을 맡긴 후 사후부양자에게 반려동물 양육자금을 지급하는 'KB반려행복신탁', 기업의 CEO 보유 주식을 가업승계 목적으로 신탁하고 사후 주식을 승계자에게 상속하는 'KB가업승계신탁' 등 여러 상품이 있다.

신한은행은 고객 스스로 사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상조회사를 수익자로 지정해 은행에 금전을 신탁하고 사망 시 유가족이 상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 '신한S Life Care 상조신탁'을 2021년 출시했다. 셀프 장례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 상품이다.

하나은행은 사전에는 재산관리, 사후에는 상속플랜을 달성할 수 있게 '하나리빙트러스트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신탁재산으로 수탁한 부동산을 처분하고 그 대금을 수익자에게 교부하는 부동산 처분 신탁 상품도 있다.

특히 하나은행은 올해 비금전 특화 상품·서비스인 '미술품신탁(동산관리처분신탁)' '수익증권발행신탁'을 도입했다. 음원 조각투자플랫폼인 뮤직카우와 협업으로 수익증권발행신탁을 도입한 후 저작인접권 317곡에 대한 수익증권발행을 완료했다.

하나은행은 "신탁업 활성화에 따른 새로운 수탁재산(생명보험권과 채무 등)이 추가될 시 관련 신규 상품라인업을 추가 검토 중"이라며 "초고령사회 신탁업 발전 방향성과 상품 벤치마킹을 위해 당행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한 일본 스미트러스트와 인재개발 현지 연수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일본 등 다양한 국가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라며 "채무, 담보권 등 취급재산이 다양해지면 종합적인 재산관리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지고 비이자수익도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도 "고령층 수요에 부합하는 유언대용신탁은 단기간 가시적 성과보다 고객 관리차원에서 종합 서비스 일환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은행이 신탁을 통한 복지 기능을 수행하는 등 사회적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이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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