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임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07 18:10

수정 2023.12.07 18:10

[특별기고] 임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산림공학분야 전문가라는 직함으로 지내온 지 어언 20년이 됐다. 여름철이면 산사태에 온 관심이 집중되고, 요즘과 같이 기온이 내려가고 강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산불발생 뉴스에 나도 모르게 경직된다. 산사태와 산불은 우리나라 숲에서 일어나는 대형재난으로 그간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특이하게도 2~3년 전부터 산사태와 산불 주제에 임도 내용이 언론에서 자주 다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숲을 더 잘 가꾸기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임도가 산사태를 유발하고 숲을 더 훼손한다는 부정적 논리를 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도밀도(일정 면적에 놓여 있는 임도의 총길이)'라는 다소 학문적인 용어도 자주 언급된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임도밀도의 적절성에 대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을 정도다.

산림공학을 다뤄 온 사람으로서 이 논쟁을 바라볼 때면 주장의 진위를 떠나 논쟁의 초점이 일부 벗어났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첫 번째 논쟁은 우리나라 숲에 임도가 필요한가이다. 이 논쟁은 쉽게 합의점을 찾을 것 같다. 쉽게 말해 아무도 숲에 갈 수 없고 숲을 이용하지도 못하며 그저 먼발치에서 숲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숲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임도는 필요하다고 모두 인정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숲의 임도가 본래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정도로 잘 갖춰져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임도의 역할에 따라 어떤 곳은 촘촘히 임도가 필요하고, 어떤 산에는 다소 띄엄띄엄 깔린 임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목재를 생산하려 한다면 작업기계의 생산성이 최대가 되도록 가급적 임도밀도가 높을수록 좋다. 반대로, 숲을 보호하고 동식물을 보존하려 한다면 보전기능에 적합하게 임도를 설치해 경관 훼손과 인위적인 간섭을 줄이는 게 좋다. 이처럼 임도는 기능과 역할에 따라 적절한 임도밀도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임도밀도는 임업 선진국에 비해 최소한의 임도밀도도 갖추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숲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도망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면 임도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임도를 개량 및 확장해 임도가 제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재해에 안전하고 환경훼손이 적은 임도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임도로 인한 환경훼손과 재해위험이 있다고 임도 개설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제도나 시설의 필요성과 실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도로 자체를 없애자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량 운행에 관한 제반 규정과 규칙을 정비하고, 다친 사람이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보험제도를 통해 운전자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임도에 대해서도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해 우리가 동의한다면, 다음 단계는 임도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부 단체의 주장 중 임도에 대해 가지는 가장 부정적인 생각은 임도가 산사태와 같은 산림재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토목 건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시 말해 임도를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 생기는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 도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도건설 사업비를 현실에 맞게 투입하고 공사관리와 감독을 철저히 한다면 더 이상 '임도로 인해 산사태는 없다'라는 극단적인 해답은 아니라도, 산사태의 원인이 극한 호우가 아닌 임도라고 취급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임도를 두고 일어나는 여러 논쟁과 시각들은 우리나라 숲을 잘 가꾸고, 잘 이용하고, 잘 보전하기 위한 목표에서 시작돼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건전한 논쟁이 돼야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임도는 숲을 가꾸고 키우는 데 필요한 기반시설이다.
이제는 숲의 기능에 따라 적절한 임도 수준을 갖춰 우리가 기대하는 숲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갖고 싶다.

임상준 한국산림공학회장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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