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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의 기업가정신] 번지점프대에 선 새마을금고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13 18:14

수정 2023.12.13 18:14

정체성 빠진 혁신안 불안
중앙회장 선거 비전 없어
공감 공정 공유로 혁신을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새마을금고가 잇단 쇄신의 심판대 앞에 섰다. 지난달 새마을금고 경영혁신자문회의가 발표한 혁신안이 첫 신호탄이다. 오는 21일 직선제로 치르는 새마을금고중앙회장 선거가 피날레다. 그런데 뭔가 좀 찜찜하다. 제도와 수장을 바꾸면 새마을금고는 정상 작동한단 말인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급히 봉합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8월 수십명의 임직원이 비위 혐의로 기소되고 횡령사고와 후진적 조직문화 및 뱅크런(대규모 현금인출)까지 사건의 연속이었다.
새마을금고로선 치욕이자 불명예인 해로 기억될 것이다.

기업가정신의 정수인 혁신을 하려면 조직의 정체성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그런데 새마을금고의 변신 과정엔 정체성 확인 과정이 빠졌다. 경영혁신자문회의가 내놓은 혁신안이 그렇다. 이번 혁신안은 중앙회장의 권한을 줄이고 건전성 관리 등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들이 일반 상업금융기관에 적용하는 잣대를 새마을금고에 그대로 들이댔다는 점이다. '상부상조 협동정신'을 모토로 내건 새마을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빠졌다는 점에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일 뿐이다. 이런 혁신안의 틀에서 새로운 중앙회장을 뽑아봤자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새마을금고가 바로 서려면 '새마을금고법 제1조(목적)'를 읽어봐야 한다. 제1조는 "이 법은 국민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하여 자금의 조성과 이용, 회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 지역사회 개발을 통한 건전한 국민정신의 함양과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상부상조 정신과 조합원 중심의 풀뿌리 금융기관이 새마을금고의 정체성이다.

새마을금고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협동조합의 성격을 강화할 것인지, 일반 상업금융기관으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법 개정이나 현재 조합원들의 권리를 감안할 때 기존 협동조합 성격을 버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외부인 주도로 혁신안을 만드는 것과 별개로 새마을금고의 미래지향적 사업모델을 제시하는 게 옳다. 상부상조와 조합원 이익 중심의 근간을 유지하되 전문성과 내부통제 불안을 보강하는 혼합방식도 좋다.

새마을금고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경쟁력 있는 사업모델을 찾는 게 어렵다면 그건 변명일 뿐이다. 유럽은 협동조합 중심의 금융기관 서비스가 매우 활발하다. 선진국일수록 금융기관의 다양성이 더 넓다. 새마을금고가 유럽협동조합은행연맹(EACB)과 꾸준히 교류해온 것도 선진 금융협동조합의 발전 가능성을 벤치마킹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새마을금고 창립 60주년을 맞아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선 지속가능한 발전모델까지 도출했다. 지역별로 나뉜 소규모의 협동조합은 지역 밀착형 금융서비스에 주력하고, 중앙은행은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업과 협력모델까지 제시된 바 있다. 더구나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올해 '세계 새마을금고의 날'까지 선포했다. 우리나라 새마을금고 금융시스템이 개발도상국에 전파돼 글로벌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혁신을 책임진 리더는 비전을 내놔야 한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조직 정체성을 제시하고 그게 걸맞은 사업모델을 내걸고 조직문화를 쇄신하는 세 가지 액션이 요구된다. 요즘 현대 경영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조류에 새마을금고는 이미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시대적 화두가 된 공감, 공정, 공유의 가치로 낡은 조직구조를 바로 세워야 한다. 새마을금고를 믿고 신뢰하는 금융소비자와 조합원들의 니즈를 깊게 읽어내는 게 공감이다.
새마을금고 내에서 벌어지는 갑질 논란, 세대갈등, 불공정한 인사를 바로잡는 공정의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부상조와 협동조합의 정신에 걸맞게 지역사회와 밀착된 금융서비스로 나눔의 선순환을 만드는 공유 정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
비방과 흠집 내기가 아닌 비전을 제시하는 중앙회장 선거문화에 거는 기대가 크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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