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핀란드, 40년 걸려 세계 첫 방폐장 완공… 한국은 수십년 표류 [첫발도 못 떼고 '길잃은 방폐장']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13 18:19

수정 2023.12.14 07:57

(上) 앞서가는 핀란드·스웨덴
온칼로 방폐장 내년말 시운전.. 사용후핵연료 10만년 봉인
스웨덴도 2033년 완공 계획
핀란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개념도. 포시바 홈페이지
핀란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개념도. 포시바 홈페이지
우리나라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건설 추진은 지난 1983년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9차례 부지선정에 실패했다. 주민 반발, 여야 갈등으로 해결책 마련은 차일피일 미뤄져 이제 방폐장 건설의 마지노선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방폐장 건설을 위한 '고준위 특별법'은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본지는 고준위 폐기물과 관련해 앞서 나가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방폐장 건설 필요성과 시급성 등을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한 고준위 방폐장 용지 선정 절차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1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협의대상에 포함되면서 수십년 표류를 끝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럽의 주요 원전국가들은 이미 일찌감치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한참 늦은 상태다.
특히 내년 총선 시즌에 들어가면 국회가 정상 기능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이 바로 고준위 특별법 처리의 적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갈등으로 얼룩진 '고난의 역사'

우리나라의 방폐장 추진 역사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장면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1986년부터 안면도, 굴업도, 영광, 울진 등 9차례 추진됐지만 격렬한 반대와 주민 시위 등으로 모두 실패했다. 지난 1989년 경북 영덕, 울진 등에 대한 부지조사는 주민 반대로 중단됐으며 1990년 11월에는 안면도가 후보지로 선정되자 무력시위가 일어나 주무부처 장관이 옷까지 벗어야 했다.

그 뒤로도 고난은 이어졌다. 1993년 전남 장흥이 무산된 후 1994년 다시 울진군은 주민 2000여명이 찬성 서명을 했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등 극심한 저항을 해 결국 백지화됐다. 같은 해 12월 인천 옹진군 굴업도를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지구로 지정·고시하고, 주변 지역 지원을 위해 특별지원금 500억원까지 출연했지만 강도 높은 반대에 부딪혀 지정고시를 결국 해제했다. 1997년 들어 이 골칫거리 사업은 주관부처가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으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 사례는 어떨까. 고준위 방폐장 건설과 관련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원전가동 국가들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핀란드는 꾸준한 기술개발, 주민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전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을 갖추게 됐다. 스웨덴은 2026년 방폐장 건설에 착공, 2033년 완공이 예정돼 있는 등 원전가동으로 인한 책임을 현재 세대가 지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초 방폐장 완공한 핀란드

1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환경공단 등에 따르면 핀란드는 내년 말쯤 온칼로 방폐장의 시운전에 돌입하며 방폐장을 확보하는 첫 국가가 될 전망이다.

핀란드는 지난 1977년부터 원전가동을 시작했다. 원전가동을 시작한 다음 해부터 원전 운영사들이 방폐장 건설을 위한 기금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지난 1983년 고준위 방폐장 건설 논의를 시작해 2001년 세계 최초로 올키루오토섬을 처분시설 부지로 선정했다. 처분시설 부지 선정 이후 핀란드 정부는 처분시설 건설허가 취득에 필요한 실증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04년부터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 '온칼로'를 건설·운영해왔다. 2015년엔 처분시설 허가를 받고, 2016년 건설을 시작해 오는 2025년경 최종처분을 시작할 계획이다.

온칼로 방폐장은 로봇이 사용후핵연료 핵다발을 구리와 주철로 만든 캡슐에 넣은 뒤 지하터널로 옮겨 묻을 예정이다. 최대 6500t 분량의 사용후핵연료를 약 10만년 동안 봉인한다. 핀란드의 고준위 방폐물 전담기관인 포시바에 따르면 온칼로 방폐장의 처분갱도 연장거리는 약 4㎞, 처분구역의 면적은 2~3㎢이다.

핀란드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 건립 논의 과정에서 국민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건립예정지 주민들과 오랜 기간 소통을 이어갔다. 핀란드 정부는 잠재부지 도출(101개)-예비조사(5개)-상세조사(4개)-지자체 의견수렴-후보부지 선정(1개)-지방의회 동의-국회 비준-최종 선정이라는 복잡한 과정에 20년의 시간을 들였다.

핀란드의 안전규제기관인 스툭(STUK)의 역할도 컸다. 스툭의 독립적 지위에 대한 핀란드 국민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툭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83%에 이른다.

■핀란드와 같은 길 가는 스웨덴

핀란드와 인접한 스웨덴 역시 같은 길을 밟아가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1990년대부터 처분시설 부지선정 작업에 착수, 2009년 포스마크를 영구처분시설 부지로 최종 선정했다. 이후 지난 2022년 1월 자국의 사용후핵연료를 땅속에 영구 처분하기 위한 저장시설 건설계획을 승인했다.

스웨덴 원자력 연료 및 폐기물 관리회사(SKB)는 2011년 스웨덴 환경법과 원자력 활동법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을 위한 시스템 허가를 신청했다. 2019년 한 차례 보강을 거친 끝에 스웨덴 정부는 신청서가 법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건설을 허가했다. 환경검토가 마무리되면 건설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스웨덴은 2026년 방폐장 건설에 착공하고, 2033년 완공할 계획이다.


이 같은 시설 건설계획이 승인을 받은 것은 핀란드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스웨덴은 수십만년간 움직이지 않고 물도 스며들지 않는 지하 500m 아래 점토층에 대규모 갱도를 만들고, 핵폐기물을 구리와 콘크리트 등으로 만든 용기에 담아 영구저장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핀란드,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처음 논의한 시점이 비슷한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답보상태인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주민설득 실패와 정치권의 책임회피가 지금까지 미뤄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