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내책 톺아보기] 디테일과 풍미를 담은 'TAKE OUT 유럽역사문명'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1 12:53

수정 2023.12.21 12:53

TAKE OUT 유럽역사문명 / 하광용 / 파람북
TAKE OUT 유럽역사문명 / 하광용 / 파람북

1998년 배낭여행 때의 일이다.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출발한 기차는 로텐부르크 거의 다 가서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유레일 패스를 이용한 배낭여행에서 버스로 치면 마을버스 같은 허름한 동네 기차를 갈아탄 것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릴 때 도착한 로텐부르크, 역부터 걸어서 어둠 속 영화의 성문 같은 입구를 지나 곧바로 나타난 예약한 숙소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신비한 기운과 소리에 잠을 깨 본능적으로 창쪽으로 발을 옮겨 좌우 날개형 목조 창문을 밀어 젖히는 순간, 탄성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창문 밖에는 중세의 아침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이드북을 통해 도시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는 갔으나 이런 정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이전 가 본 유럽의 도시 중에도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많았으나 로텐부르크는 그곳들과 달랐다.

시원스레 펼쳐진 고색창연한 지붕의 행렬 끝에 성벽과 망루가 보이고 그 너머로 산과 하늘이 이어졌다. 골목길엔 노새인지 당나귀인지 구별 안 되는 가축이 끄는 달구지가 정차해 있고, 그것을 몰고 온 마부가 식품점이 있는 1층에 신선한 야채를 납품하며 주인과 뭔 말인지 모를 독일어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아침에 깨어난 것 같은 환상을 느꼈다.

로텐부르크는 현대식 호텔이나 건물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중세의 성벽 도시였다. '로마인의 길'이 아닌 '낭만적인 길'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입증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낭만의 근거이자 핵심은 바로 그때 내가 느낀 '중세(Medieval Period)'라는 시대 요소일 것이다.

서구 역사에서 중세의 기나긴 시간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중세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 다른 시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발전과 진보가 없던 시대였다. 그 원인으로 서구 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영향을 1순위로 꼽는다. 인본보다는 신성을 우선시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세가 그러하니 그 전과 후는 인본의 시대이고 광명의 시대였을 것이다. 중세 이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가 그러했고, 이후 그것을 부활시키자는 르네상스 시대가 오면서 인류는 신 아래 억눌려 잃어버렸던 인간 본성을 되찾게 됐다.

로텐부르크 하룻밤 여행담에서 알 수 있듯, 중세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대였음이 틀림없다. 봉건제도 하에 멋진 기사와 그의 정신인 기사도,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왕비와 공주, 또는 영주 부인 등과의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살던 로만티크 가도 끝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스타인성 같은 아름다운 고성도 그런 아련한 판타지를 더욱 자극하곤 한다.

하지만 작품 속 중세 주인공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아닌, 이루어지지 않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적대적인 가문 간의 사랑, 원탁의 기사 랜슬롯과 기네비어 왕비 간의 불륜을 다룬 '킹 아서' 같은 신분을 초월한 사랑,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 전사와 이슬람 여인과의 사랑을 다룬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적과의 동침과 같은 비극적인 사랑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 중세의 문학과 예술 작품 속엔 중세의 영웅들을 돕거나 방해하는 마술사나 요정, 괴물 같은 존재도 감초로 등장하곤 한다.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흥미 요소도 갖췄다는 말이다. 또 기독교 내에 신학적 해석에 따라 분파한 다수의 수도원과 수도사의 생활도 중세를 규정짓는 주요 문화로 등장한다. 수도사들은 그곳에서 청빈과 금욕 등으로 고통스러운 영성 생활을 이어갔을 텐데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에선 그 또한 중세를 경건하고 신비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게 한다.


‘TAKE OUT 유럽역사문명’은 유럽 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들을 소개하고자 집필했다. 지중해 곳곳의 전설적인 고대 유적에서, 로맨틱한 중세의 정경을 그대로 간직한 크로아티아와 독일의 마을에서 유럽의 현재와 과거가 만난다.
추상적인 개념들보다는 책에서 소개하는 구체적인 사례와 일화 중심으로 가볍고 흥미롭게, 하지만 관점과 깊이를 가지고 유럽을 탐방하듯 역사를 이해해보길 바란다.

하광용 인문교양작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