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업과 옛 신문광고

[기업과 옛 신문광고] 첫 TV 방송과 TV 수상기 광고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1 18:16

수정 2023.12.21 18:16

[기업과 옛 신문광고] 첫 TV 방송과 TV 수상기 광고
"KBS, 여기는 채널9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입니다. HLCK." 1961년 12월 31일 국영 서울텔레비전방송국(KBS 1TV 전신)이 고고(呱呱)의 성을 울리며 개국했다.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TV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방송이 시작되자 1962년 새해 벽두부터 TV 수상기 광고가 잇따라 등장한다. 일본 도시바·산요·내셔널, 미국 웨스팅하우스·RCA 등 여러 TV 브랜드들이 일제히 광고를 실었다.

HLCK가 국내 첫 TV 방송은 아니다.
1956년 5월 14일 밤 서울 종로 네거리. 운집한 군중이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 속의 영상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광화문 등 20여곳에도 TV 수상기가 설치됐다. 미국 RCA사와 민간자본이 합작한 호출부호 HLKZ 대한방송의 국내 첫 TV 방송이었다. 1926년 스코틀랜드인 존 베어드가 TV를 발명한 뒤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 4번째였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는 활동사진', 즉 영화 상영은 1903년 6월 서울 동대문 한성전기회사에서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사기를 돌린 것이 효시다.

대한방송은 여성 TV 아나운서 1명을 뽑는 광고를 냈는데 유학파 등 50여명이 몰려들었다. 심사 끝에 명문대 출신 3명을 최초로 선발했다. 최초의 TV 광고도 했다. 현 HDC영창의 전신인 영창산업이 만든 '유니버어설 레코오드' 광고였다. 움직이는 영상 광고가 아니라 신문 광고처럼 이미지만 보여주는 광고였다. 춤바람이 불던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듯 남녀가 레코드판 위에서 춤을 추는 그림으로 '깨지지 않는 레코드'라고 선전했다. 어렵게 꾸려가던 대한방송은 1959년 2월 스튜디오에 큰불이 나고 경영난까지 겹쳐 1961년 방송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어서 국영 TV방송국이 개국한 것이다.

종전 직후 먹고살기도 어려운 형편에서 TV는 언감생심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경제사정이 나아지자 TV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TV 방송에는 시청자가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미제 RCA와 일제 내셔널 등 2만대의 수상기를 수입, 월부로 판매하였는데 이때 월부 구매를 원하는 사람의 수는 대단한 것이어서 접수용지만 해도 20만장이 나갔다는 소문과 용지 값만 해도 TV 대금에 가깝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매일경제 1967년 9월 21일자)

이제 막 라디오를 만들 정도의 국내 기술 수준이어서 첨단 전자제품인 TV는 수입품을 써야 했다. 일본 도시바의 14인치 작은 수상기 가격이 화폐개혁 전의 단위로 12만8800환이었다. 요즘 가치로 대략 따지면 500만원 넘는 큰돈이라 정부에서 할부 판매를 '알선'했다고 광고에 쓰여 있다(조선일보 1962년 2월 19일자·사진). 당시 기사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 월급이 6만환 남짓이었다. 고가임에도 구매자가 쇄도해 판매업자들은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신청서를 나눠줬다.

최초의 국산 TV 출시는 그로부터 4년을 기다려야 했다. 금성사가 1966년 8월 출시한 'VD-191' 48㎝(19인치)짜리 흑백 TV다. 국산화 비율은 50% 정도. 가격은 6만8000원으로 당시 쌀 약 27가마 값과 맞먹는 거금이었다. 1차로 500대를 생산한 첫 국산 TV를 사려는 경쟁은 전보다 더 치열했다.
집에 TV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고, 은행에 신청서를 내면 공개 추첨으로 구매자를 뽑았다. 초창기 아파트 추첨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삼성전자는 그보다 4년 후인 1970년 일본 산요와 합작, 흑백 TV를 생산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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