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페이스북 글 옮겨 게시했는데 '명예훼손', 무슨 일? [서초카페]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2 10:56

수정 2023.12.22 11:53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 대법원 첫 판결
페이스북 로고. /사진=뉴시스
페이스북 로고.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페이스북을 보다가 멋진 글을 발견했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게 담긴 내용이었다. 욕심이 났다. 나의 페이스북 게시판에 옮겨다 놓았더니, 호응이 좋았다. 한 번, 두 번 하던 것이 수십 차례 이어졌다.

고민은 했으나 다른 사람의 글이라는 것을 표시하지 않았고, 다른 글처럼 보이기 위해 문맥을 조금씩 바꿨다.
결국 소송을 당했는데, 저작권자의 명예도 훼손했단다. 사법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일까?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모두 47차례에 걸쳐 기계항공공학 박사이면서 기술연구소 소장이던 B씨의 글을 무단으로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퍼다 날랐다.

A씨는 이 과정에서 B씨 이름을 감추고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게시했고, 임의로 내용을 더하거나 구성을 변경하는 꼼수도 부렸다.

A씨에겐 △타인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복제해 옮긴 복제 및 공중 송신권 침해 △저작자 허위표시 공표 △저작인격권 침해 등 혐의가 적용됐다.

1심은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저작인격권에 대해선 일부 이유를 무죄로 보고 나머지 혐의는 유죄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B씨의 명예가 손상됐다고 달리 판단했다.

따라서 사건의 쟁점은 타인의 페이스북과 저널 연재 게시물을 일부 바꿔 자신의 SNS에 스스로 쓴 것처럼 무단으로 게시한 것이 저작자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고 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가 된다.

대법원은 A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에 당초 B씨의 글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겐 그동안 B씨의 주관이나 지식이 아니라, 원래부터 A씨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봤다. 또 이로 인해 저작자인 B씨의 전문성이나 식견 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위험도 있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A씨의 저작물로 인식될 경우 B씨가 창작 등을 통해 얻은 사회적 평판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의심할 수 있는 우려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종합, “A씨는 B씨의 저작인격권인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해 B씨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면서 “이는 저작자인 B씨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A씨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 위반죄에 관해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판단한 사례가 없었다”며 “구체적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고 의의를 부여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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