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화마에 두 딸 살리고 숨진 30대 가장, 약사였다..유가족 "하늘 무너져"

조유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7 07:11

수정 2023.12.27 07:11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의 애도' 이어져
도봉구 화재로 2명 숨지고 30여명 부상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에 차려진 박모씨(33) 빈소 /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에 차려진 박모씨(33) 빈소 /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성탄절 새벽, 화마가 덮친 집에서 딸들을 살리고 숨진 30대 남성의 빈소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에는 전날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 난 불로 사망한 박모씨(33)의 빈소가 마련됐다.

"법 없이도 살 아이" 눈물 보인 큰아버지

빈소 앞에는 유가족 이름으로 "사랑하는 ○○! 짧은 생 멋있게 살다 간다"라고 적힌 조화가 놓여있었다.

자신을 고인의 큰아버지라고 밝힌 유가족은 "어제 (사고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가장 예뻐하던 조카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박씨에 대해 "재작년에 약사가 됐다.
늘 솔선수범하고 남을 돕고 정말 법 없이도 살 아이였다"라고 회상했다.

박씨는 모 대학 약학과 출신으로 약사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와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한 조문객은 "책임감 강하고 학교 다닐 때 뭐든지 늘 열심히 했던 후배"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풍물패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다는 한 친구는 "학생회장도 하고 동아리에서도 회장·부회장을 맡았었다. 너무 좋은 동생이고 친구였다"라고 전했다.

교회 장로는 "딸 정말 잘 챙기도 아빠였다"

박씨 가족이 평소 다니던 교회의 장로라고 밝힌 조문객은 "고인이 딸들을 정말 잘 챙기던 아빠였는데 남겨진 두 딸이 제일 안타깝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늘 과묵하고 청년들을 잘 챙겨주던 좋은 형이었다. 배우자도 정말 착하신 분이라 늘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인이었다"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고인은 전날 화재가 난 아파트 4층에서 아내 정모씨(34)와 두 살배기·7개월짜리 딸과 함께 살다 변을 당했다.

박씨는 아래층인 301호에서 시작된 불이 순식간에 위로 번지자 재활용 포대 위로 큰딸을 던진 뒤 둘째 딸을 이불에 싸 안고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

포대 위가 아닌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박씨는 심정지 상태로 인근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이날 부검 결과 사인은 '추락사'로 추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4층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받은 둔력에 의해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두 딸과 박씨를 따라 뛰어내린 정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아파트 다른 동에 살던 박씨 부부는 6개월 전 더 큰 넓은 집을 찾다 이곳에 전세를 얻어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님 먼저 대피시키고 숨진 '또다른 사망자' 임모씨 빈소도

한편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또 다른 사망자 임모씨(37)의 빈소가 하루 먼저 차려졌다.

임씨는 10층 거주자로, 화재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했다. 부모님과 남동생을 먼저 대피시킨 임씨는 가장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와 화재를 피하려고 했으나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결국 숨졌다. 임씨의 사인은 '연기 흡입으로 인한 화재사'로 추정된다.

이번 화재로 박씨와 임씨 2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을 입었다. 화재가 발생한 세대는 전소됐고, 일부 층 베란다 등이 소실돼 총 1억98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소방 당국·한국전기안전공사와 합동감식을 통해 화재가 사람의 부주의로 인한 실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불이 처음 난 곳으로 추정되는 301호 작은방에서는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증거물을 화재 원인 규명의 결정적 단서로 보고 전날 사고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한편 그 외의 화재 원인 등 여러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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