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놀란 자는 OO하게 하면 안정된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30 06:00

수정 2023.12.30 15:12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장자화(張子和)가 지은 <유문사친(儒門事親)>에는 기(氣)의 조절을 통해서 다양한 감정을 다스리는 정지요법(情志療法)이 나온다.
장자화(張子和)가 지은 <유문사친(儒門事親)> 에는 기(氣)의 조절을 통해서 다양한 감정을 다스리는 정지요법(情志療法)이 나온다.

먼 옛날에 위덕신(衛德新)의 부인이 홀로 먼 길을 출타하던 중에 어느 누각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런데 밤에 객사에 도둑이 들어와 사람들을 겁박하고 돈과 패물을 빼앗고 객사에 불까지 질렀다. 부인은 너무 놀라서 침상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후로 부인은 불안, 초조해하면서 밤중에 아주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서 쓰려지면서 인사불성이 되기 일쑤였다. 집안 사람들은 소리가 나지 않게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고 물건끼리 서로 부딪쳐서 소리가 날까 봐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인의 증상은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많은 의원들은 부인의 증상을 심병(心病)으로 보고 다양한 처방을 했다. 먼저 첫 번째 의원은 부인의 증상에 따라 기를 보하는 인삼(人蔘)과 심장을 안정시키는 진주(珍珠)를 첨가한 정지환(定志丸)을 처방했다. 정지환은 놀라고 두려워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어느 의원은 온담탕(溫膽湯)을 처방했다. 온담탕은 심과 담이 허약하고 번거로워 일마다 잘 놀라고 꿈자리가 사납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허번(虛煩)하여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다스리는 처방이다. 효과가 없자 또 다른 의원은 건망, 정충(怔忡), 경계(驚悸), 불면에 쓰는 귀비탕(歸脾湯) 등을 처방했지만 부인의 증상은 여전했다.

당시 장자화(張子和)라는 의원이 치료에 나섰다. 장자화(張子和)는 호가 대인(戴人)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장대인(張戴人)이라고도 불렀다. 덕신은 무슨 이유였는지 몰라도 평소 장대인을 달갑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의원들이 이미 치료를 해 봤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장대인에게 부인의 치료를 맡겼다.

장대인이 진찰을 해 보더니 “부인은 지금 심(心)과 담(膽)이 상해서 나타나는 심담허겁증(心膽虛怯症)입니다. 특히 족소양담경은 간목(肝木)에 속하는데, 담은 감히 감행하는 용기와 관련이 있어 놀라고 두려우면 담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니 심과 담을 보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의원이 “그와 관련된 처방은 익히 써 봤지만 효과가 없었소이다.”라고 했다.

장대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놀란 것은 양(陽)이니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고, 무서운 것은 음(陰)이니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놀란 것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생긴 것이고, 두려운 것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롯된 것이지요. 그래서 놀란 것은 예측을 못하는 경우에 생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다면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장대인은 두 명의 시녀에게 부인의 양손을 한명씩 잡게 하더니 다리가 기다란 의자 위에 부인을 앉혔다. 그러고서는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부인의 앞쪽 바닥에 작은 궤짝을 하나 내려놓았다.

그러고서는 “부인 여기 보시오.”라고 하더니 나무 막대기로 궤짝을 세게 내리쳤다. 부인은 바닥에 놓인 궤짝을 쳐다보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아주 크게 놀랐다.

그러나 장대인은 “제가 그냥 나무 막대기로 궤짝을 쳤을 뿐인데, 무얼 그렇게 놀라는 것이요?”라고 했다.

부인이 잠시 진정이 된 후 장대인은 나무 막대기로 궤짝을 다시 한번 세게 내리쳤다. 부인은 전보다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장대인은 이렇게 서너 차례 반복해서 궤짝을 내리쳤다. 부인의 놀라는 기색이 점차 완만해졌다.

그러자 이제는 장대를 이용해서 문을 세게 쳤다. 또 몰래 사람을 부인의 등 뒤쪽에 있는 창문 쪽으로 보내 그림자를 비치게 하였다. 부인은 이제 전혀 놀라지 않았다.

부인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이것은 어떤 치료법입니까?”라고 물었다.

장대인은 “<내경>에 보면 놀란 자는 평지(平之)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치료 대강을 실천한 ‘경자평지요법(驚者平之療法)’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기(氣)의 조절을 통해서 감정을 다스리는 법으로 정지요법(情志療法)이라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의원이 “경자평지(驚者平之)라니요. 평(平)란 어떤 의미입니까?”하고 물었다.

장대인은 “평지(平之)하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안정시키라는 의미입니다. 안정시킨다는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익숙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놀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나 처음 보는 것, 처음 듣는 소리에는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자주 경험하고 자주 보게 되고 자주 듣게 되면 놀라지 않는다. ‘그럴 것이다’라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놀라지 않는 것이다.

의원이 다시 물었다. “그럼 하필이면 왜 나무 막대기로 바닥에 놓인 궤짝을 친 것입니까? 어깨를 내리치거나 소리를 질러서 놀라게 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장대인은 “놀라는 것은 신(神)이 위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이 사나워지면서 심지어 졸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눈을 치켜뜨게 되지요. 그래서 부인을 높은 의자에 앉혀 놓고 바닥에 있는 궤짝을 내리쳐서 부인으로 하여금 아래를 내려보게 한 것이고, 이로 인해서 흩어지려고 하는 신(神)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을 했다.

실제로 눈동자가 쳐다보는 방향에 따라서 심(心)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할 때는 눈동자가 위쪽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눈동자가 위쪽을 향해 있다는 것은 과도한 긴장 상태이거나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반면에 깊은 사색에 잠기거나 명상을 할 때는 눈동자가 아래를 향한다. 그래서 눈동자를 아래로 쳐다보면 긴장감이 풀어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사시(斜視)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불안장애, 조현병, 양극성 장애, 우울장애 등의 정신질환의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반대로 사시를 치료하게 되면 이러한 정신질환의 발현도가 낮아진다.

장대인은 그날 밤에 사람을 시켜 부인 처소의 창문을 두드려 보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부인에게 “밤에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까?”라고 묻자, 부인은 “저녁을 먹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깊이 잠들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를 부르기라도 하셨습니까?”라고 했다.

이틀 후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면 천둥 번개가 쳤는데도, 부인은 밤에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놀라지 않게 되었다. 남편인 덕신은 장대인의 치료에 매우 만족했다. 그래서 장대인의 치료라면 매우 신임하게 되었고 치료를 받을 때는 장대인이 하라는 대로 따랐다.

심지어 누군가 “장대인은 의학을 모른다.”라고 말할 것 같으면 창을 들고서는 그 사람을 쫓아내 버렸다.

덕신의 부인이 장대인의 정지요법으로 치료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어느 의원이 장대인을 찾아와 물었다.

“혹시 경(驚, 놀람) 이외에도 노(怒, 분노), 희(喜, 기쁨), 사(思, 근심), 비(悲, 슬픔), 공(恐, 두려움)에 대한 감정을 이처럼 치료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장대인은 “그렇습니다. 비(悲, 슬픔)는 노(怒, 분노)를 다스릴 수 있으니, 슬프고 고통스러운 말로써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분노가 사라집니다. 희(喜, 기쁨)는 비(悲, 슬픔)를 다스릴 수 있으니, 장난치면서 친근하게 하는 말로써 즐겁게 만들면 슬픔이 사라집니다. 공(恐,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희(喜, 기쁨)를 다스릴 수 있으니, 두렵거나 누군가 죽었다는 말로써 공포를 느끼게 만들면 과도한 기쁨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어서 ”또한 노(怒)는 사(思, 근심)를 다스릴 수 있으니, 모욕하고 속이는 말로써 화가 나게 하면 근심이 사라집니다. 사(思, 근심)는 공(恐,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으니, 다른 걱정거리를 생각하도록 하여 그것에 뜻을 두게 하는 말을 함으로써 생각을 빼앗으면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어느 의원이라도 이 방법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장대인은 “무릇 이러한 다섯 가지는 반드시 교묘하게 속이는 기술이 있어야만 이목(耳目)을 변화시켜 환자의 감정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이러한 재주와 능력이 없는 의원이라면 섣불리 시도해서는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환자보다 의사의 기가 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환자는 의사를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했다.

* 제목의 ○○은 ‘익숙’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유문사친(儒門事親)> ○ 內傷形. 衛德新之妻, 旅中宿于樓上, 夜值盜劫人燒舍, 驚墜床下, 自後每聞有響, 則驚倒不知人, 家人輩躡足而行, 莫敢冒觸有聲, 歲餘不痊. 諸醫作心病治之, 人參, 珍珠及定志丸, 皆無效. 戴人見而斷之曰:驚者為陽, 從外入也;恐者為陰, 從內出也. 驚者, 為自不知故也;恐者, 自知也. 足少陽膽經屬肝木. 膽者, 敢也. 驚怕則膽傷矣. 乃命二侍女執其兩手, 按高椅之上, 當面前, 下置一小几. 戴人曰:娘子當視此. 一木猛擊之, 其婦人大驚. 戴人曰:我以木擊几, 何以驚乎? 伺少定擊之, 驚也緩. 又斯須, 連擊三, 五次;又以杖擊門;又暗遣人畫背後之窗, 徐徐驚定而笑曰:是何治法? 戴人曰:《內經》云:驚者平之. 平者, 常也. 平常見之必無驚. 是夜使人擊其門窗, 自夕達曙. 夫驚者, 神上越也. 從下擊幾, 使之下視, 所以收神也. 一二日, 雖聞雷而不驚. 德新素不喜戴人, 至是終身厭服, 如有言戴人不知醫者, 執戈以逐之.(내상형. 위덕신의 부인이 여행 중에 누각에서 잠을 자다가, 밤에 도둑이 사람을 겁박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침상 아래로 떨어졌다. 그 이후로 매번 어떤 소리를 듣게 되면 곧 놀라자빠지면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집안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걷더라도 걸을 때마다 소리 나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였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 낫지 않았다. 모든 의사들이 심병으로 치료하여 인삼이나 진주 및 정지환을 써보았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대인이 이것을 보고는 단정하여 말하기를 “놀라는 것은 양이니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고, 두려운 것은 음이니 내부로부터 나가는 것이다. 놀라는 것은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두려운 것은 스스로 아는 것이다. 족소양담경은 간목에 속하고, 담은 용감한 것이니,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곧 담이 손상을 받은 것이다.” 하고는 이에 2명의 시녀에게 명령하여 부인의 양쪽 손을 잡도록 하고, 높은 의자에 앉게 하면서 면전에 하나의 조그마한 궤짝을 놓게 하고는, 대인이 말하기를 “부인께서는 이것을 보십시오.” 하고는 나무 막대기로 사납게 두드리니 그 부인이 크게 놀랐다. 대인이 말하기를 “내가 나무막대기로 궤짝을 두드리는 것일 뿐인데, 어찌하여 놀라는 것이요?”하고는 잠깐 안정되기를 기다린 후에 다시 두드렸더니 놀라는 것이 조금 완화되었고, 또한 조금 있다가 연속적으로 3~5회 정도 두드렸다. 또한 방망이로써 문을 두드리게도 하고, 또한 몰래 사람을 보내어 부인의 등 뒤쪽에 있는 창문에 그림자를 비치게 하기도 하였더니 서서히 놀라는 것이 안정되었다. 이제야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어떠한 치료법이오?”하고 물어보았다. 대인이 말하기를 “<내경>에서 말하기를 ‘경자평지’하라고 하였는데, ‘평’이라는 것은 ‘상’을 말하는 것으로, 평소에 항상 보게 만들면 반드시 놀라지 않는 것이니, 이 밤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 창문을 두드리게 하고 저녁부터 새벽에 이르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무릇 경이라는 것은 신이 위로 벗어나는 것이니, 아래쪽에 궤짝을 두고서 두드려서 아래쪽을 보게 함으로써 신을 거두어들이게 끔 하는 것입니다. 1~2일 정도면 비록 천동소리를 듣더라도 역시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위덕신은 평소에 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만족하면서 승복하였으며, 만약 대인이 의학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내었다.)
○ 悲可以治怒, 以愴惻苦楚之言感之. 喜可以治悲, 以謔浪褻狎之言娛之. 恐可以治喜, 以迫懼死亡之言怖之. 怒可以治思, 以汚辱欺罔之言觸之. 思可以治恐, 以慮彼志此之言奪之. 凡此五者, 必詭詐譎怪, 無所不至, 然後可以動人耳目, 易人聽視. 若胸中無材器之人, 亦不能用此五法也. (비라는 감정은 노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으니, 슬프고 고통스러운 말로써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희라는 감정은 비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으니, 장난치면서 친근하게 하는 말로써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공이라는 감정은 희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으니, 두렵거나 누군가 사망했다는 말로써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노라는 감정은 사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으니, 모욕하고 속이는 말로써 자극받게 만드는 것이다. 사라는 감정은 공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으니, 다른 것을 생각하도록 하여 그것에 뜻을 두게 하는 말을 함으로써 생각을 빼앗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무릇 이러한 다섯 가지는 반드시 교묘하게 속이는 기술이 도달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연후에야 다른 사람의 이목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의 보고 듣는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니, 만약 흉중에 재주와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한 이러한 다섯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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