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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세계를 무대로 글로벌 외교 펼칠 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31 20:20

수정 2023.12.31 20:20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현 정부 들어 외교부는 글로벌 중추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인식은 아직도 4강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의 틀에 묶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냉전적 상황이 지속되는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외교가 한반도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한국은 세계 200개국 이상의 대부분 국가와 무역망을 가지고 있고, 전 세계에 167개의 재외공관을 두고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4.6%가 국제무역에서 도출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에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과 기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2024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2조7925억원으로 전년 대비 39.2%나 늘린 이유이기도 하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전자 등에 집중되었던 한국 기업의 국제진출도 이제는 방산, 원전, 배터리, 반도체는 물론 K컬처를 상징하는 영화, 음악, 스포츠 분야까지 넓혀지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를 모르는 세계인이 없을 정도다. 2022년 넷플릭스 인기 작품 상위 100개 중에 한국 작품이 16개로 집계됐다. 한국은 더 이상 동북아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론 클레인 전 바이든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국은 호주와 함께 G9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시야를 넓혀야 할 글로벌 무대는 무궁무진할 만치 넓다. 한국이 일찍이 주목했던 성장하는 중국에만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아세안(ASEAN)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세 미만일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큰 국가군이다. 14억 인구대국인 인도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높여가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나라로만 여겨졌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이 석유자원 이후 시대를 준비하면서 한국 기업의 인프라 건설능력, 방산 및 원전 등 첨단 기술개발 그리고 문화산업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서유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 북유럽 국가들도 한국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동남아에서 인도, 중동, 동유럽 그리고 북유럽에 이르는 '긴 회랑(Long Corridor)'은 한국이 재발견하고 적극 진출해야 할 새로운 기회의 보고다.

개발도상국이 모여 있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필요하다. 아프리카, 중남미, 서남아시아, 태도국(태평양 도서국) 등 적도 이남에 개발도상국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범주상으로는 여기에 속한다. 아프리카 55개국, 중남미 33개국, 태도국 14개국 등 국가 수만 따져보아도 어마어마하다. 한국 정부 ODA의 주요 대상국들도 여기에 모여 있다. 하지만 한국이 가진 매력과 강점의 핵심은 개도국에 대한 개발원조 지원액 규모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은 원조받던 국가에서 빈곤을 떨어내고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고,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이기도 하며, 인권침해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 국제적 인권옹호국이 된 나라이기도 하다. 개발도상국으로 보자면 롤모델로 삼을 만한 매력 넘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것은 국제적 책임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따라잡아야 할 세계 강국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 나머지, 특수언어 국가나 글로벌 사우스라는 전략지역 연구자가 턱없이 모자란다.
개발도상국 연구자도 더 필요하다. 대학이나 민간 싱크탱크는 저개발지역 인력양성 체계를 갖추기에는 역부족이거나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국가 차원에서 민관이 손잡고 특수지역 및 전략지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다.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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