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또 훔쳤다. 관객의 눈물...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일 테노레’[이 공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02 12:57

수정 2024.01.02 13:55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사진(오디컴퍼니)


일 테노레 공연. 홍광호, 김지현, 신성민 외. 2023.12.23.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일 테노레 공연. 홍광호, 김지현, 신성민 외. 2023.12.23.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대학로의 유명한 ‘윌&휴 콤비’가 다시 한 번 관객의 눈물을 훔쳤다. 2016년 초연돼 대학로 대표 창작뮤지컬을 넘어 미국에 역수출 된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사 박천휴·작곡 애런스 콤비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2018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일 테노레’ 리딩 공연 후 5년 만에 공연된 초연작이다. 앞서 두 사람은 “우리에게 가장 큰 칭찬은 관객의 눈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선 최초 오페라 테너 이야기 ‘일 테노레’는 테마곡 ‘꿈의 무게’ 프롤로그 버전이 극장에서 연주되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과 새로운 재능에 눈 뜬 청춘들의 찬란한 이야기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가수들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음악까지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박은태, 김지현, 신성민 등 배우들의 호연에 ‘어쩌면 해피엔딩’ 김동연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연출력 그리고 세련된 몸짓의 안무까지 더해져 초연작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이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로 브로드웨이 재입성을 노리는 오디컴퍼니 신춘수 프로듀서가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이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통할수 있는 보편성과 높은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 모든 배우, 작가, 작곡가, 크리에이티브팀, 스태프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덕분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 선샤인’이 전 세계 드라마 팬들의 마음을 훔쳤듯, 비슷한 시기를 무대로 한 이 한국적 소재의 창작뮤지컬도 미국 관객의 마음을 저격할 수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일 테노레'는 지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두루 지녔다는 점에서 대단히 순수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영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한국 뮤지컬업계의 바람에 딱 부합한다. 한국 최초의 테너 윤이선은 1940년대 초반 의대생이었지만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유명한 성악가에게 오페라를 배웠다는 실존 인물 ‘이인선(1907~1960)’을 모티브로 했다.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허구의 이야기 속 윤이선은 그 당시론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미래를 열어젖힌다. 시대의 아픔이 녹아있는 조선의 역사이자 현실의 고난을 딛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가슴 뛰는 일에 도전해온 전 세계 모든 시대의 청춘의 상징과 같다.

박은태는 구부정한 자세와 안경을 낀 차림새로 의사가 되는 것밖에 몰랐던 내성적인 의대생이자 우연히 '오페라'를 알게 되어 조선 최초의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홍광호, 박은태, 서경수)을 완성도 있게 연기한다.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 출연 중인 김지현은 항일 독립 운동을 위해 맞서는 '문학회'의 일원으로서 애국심 고취를 위해 오페라 공연에 뛰어드는 당찬 여성 서진연(김지현, 박지연, 홍지희)을 매력적으로 소화한다. 그는 우정과 사랑, 독립과 꿈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영민하면서도 자기희생적인 인물로 감동을 준다. 서진연과 함께 청춘을 독립에 바치는 '이수한'(전재홍, 신성민)까지 세 청춘은 어둡고 비극적인 시대 속 꿈과 사랑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무거운 시대에 진지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요즘으로 치면 대학캠퍼스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은 기대이상으로 웃음도 전한다. 1막에서 오페라에 푹빠진 윤이선이 다시 의대생의 일상으로 돌아와 시험을 보던 중 정체성 혼란에 빠지며 부르는 ‘환상 오페라’에선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나온다.

1막과 달리 2막은 진지하고 심각하다. 나라를 잃은 청춘에게 가수의 꿈은 사치와 같다. 모두가 선택의 기로에 서고, 시대의 어둠은 비극을 피할 수 없다. 찬란해서 더 슬픈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 객석 곳곳에선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노년이 된 윤이선이 열창하는 ‘꿈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오페라와 뮤지컬의 음악적 요소들이 합쳐진 독특한 음악과 전형성을 벗어난 감각적인 안무, 1930년대 조선의 의상까지 눈과 귀 모두 즐겁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이야기와 음악의 힘이 있다. 2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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