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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출 농어촌 희망가] 새 술을 새 부대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02 18:37

수정 2024.01.02 18:37

'농촌공간계획' 3월 시행
모두 행복추구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으로 탈바꿈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
정현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
새해가 왔다. 창을 열고 숨을 깊이 들이쉰다. 맑고 찬 공기가 허파를 가득 채우니 마음이 깨어나고 희망과 용기가 솟는다. 곰곰 따져보면 24시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도 없는데 달력 한 장 넘기니 기대가 부푼다. 연속되는 시간에 숫자를 붙여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동기 부여에 시간 구분에 못지않게 효과가 큰 것이 공간 재구성이다.
일이 더딜 때 작업장을 새로 배치하는 것이나 아이디어가 바닥날 때 여행 가는 심리를 연상해 보면 공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금방 실감할 수 있다. 잘 구성한 공간은 일의 효율을 높이고 삶을 쾌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공간의 힘을 생각할 때 2024년은 농촌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가 될 것이다. 작년 제정된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이 3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농촌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지역 내 공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법정 장기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주거와 작물재배, 축산 등 용도에 따라 지역을 구획화(zoning) 하는 '농촌특화지구' 제도도 도입, 농촌 난개발을 방지하고 시설을 재배치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어디나 과밀한 대도시는 비싼 주거비, 교통정체, 환경오염, 소음 발생 등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도시가 제공하는 활력과 성장 기회는 매력이 있지만 과연 삶의 질이 높은지 의문이다. 한편 농촌은 대체로 느린 경제성장, 누적된 난개발과 인구 고령화로 신음하는 지역이 많다. 하지만 농촌은 자연 여건이나 기후, 재배품목 등에 차이가 많으므로 도시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농촌이 매력 있는 고장이 되려면 도시에서 흔히 보는 건물이나 서비스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보다 지역 특성에 맞게 장점은 살리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정교한 지역설계가 필요하다. 서남부 유럽 등 선진국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방을 여행한 사람은 일자리, 주거, 경제 기반과 사회서비스가 균형 있게 어우러진 농촌 풍광에 감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농촌도 이처럼 모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때가 왔다.

이런 현실에서 '농촌공간계획'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지역 청년이 고향을 지키고 도시민이 지방에 정착하도록 돕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유례없이 빨랐던 산업화 기간 농촌을 도시개발 배후지역 또는 도시민 먹을거리 공급기지 정도로 취급해온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심각한 수도권 과밀과 지역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농촌 공간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토건 중심 개발사업을 벌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농촌 중심 산업으로서 농업의 역할과 기능, 자연환경 등 지역별 특성과 주민 의견을 반영한 상향식 공간계획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마침 여러 여건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2020년부터 작년 말까지 75개 지자체와 '농촌협약'을 맺고 생활편의, 문화, 교육, 돌봄 등 기능 확충에 나섰다. 작년에는 유해시설을 정비하고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농촌공간정비' 사업을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공간 전담부서를 재편하고 사업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지자체와 협력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대폭 정비했다. 작년 말 새로 부임한 송미령 장관은 농촌공간계획이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 산파 역할을 한 전문가다.

지역이 고르게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와 조직이 준비되었다.
농축산업과 연관 산업으로 도시 못지않은 소득과 기회를 만드는 경제, 쾌적한 자연 속에서 든든한 보건의료와 복지서비스를 누리는 사회, 전통과 현대 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교육문화가 꽃피는 마을을 농촌 공간에 구현해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새 부대가 준비되었다.
새 술을 담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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