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월세가 터무니 있네" 지옥고 탈출한 청년들, 이곳에서 일냈다 [선인장]

조유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3 09:08

수정 2024.01.18 09:26

<강북을 색칠하는 '로컬엔터테인먼트'>
축제 기획·김치 봉사로 지역에 스며들어
청년 주거해결 '터무늬 있는 집' 제공까지
주민과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게 목표
로컬엔터테인먼트 직원들과 최연호 대표(가장 오르쪽)/ 조합 제공
로컬엔터테인먼트 직원들과 최연호 대표(가장 오르쪽)/ 조합 제공
[파이낸셜뉴스]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노인인구 비율이 가장 많은 강북구에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13년에 '청년 활동가' 5명이 모여 마을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들은 홀몸노인이나 장애가 있는 주민들의 집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부터 김치 봉사, 마을 축제 기획 등의 활동을 하며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 남들이 하지 않는 모든 일을 한다, '로컬+엔터테인먼트'

지역의 변화를 꿈꾸며 머리를 맞대던 이들은 2018년 1월 '로컬엔터테인먼트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로컬엔터테인먼트는 '지역'을 뜻하는 '로컬'과 '기획하다'는 뜻의 '엔터테인먼트'가 합쳐진 것으로, 지역을 기획하고 꾸미는 일을 한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청년들은 조합을 통해 강북구에 본격적으로 색깔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반지하 거주지에서 시작한 조합이 이제는 사무실도 생기며 제법 기업 틀을 갖추었다. 현재 상근 직원은 3명이지만 비상근으로 협력하는 청년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은 음악, 디자인, 전기 등 전공도 다양하다. 모두 주민과 하나 되어 지역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에게 어떤 일을 하냐 물으니 "남들이 하지 않는 모든 일을 합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강의 기획, 버스킹 공연, 또 어린이 지역 체험 프로그램 진행까지,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일이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이들의 활동을 보고 다른 지역의 청년들이 함께하고 싶다며 강북구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현재 조합 대표를 맡고 있는 최연호씨(29)도 선배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강북구로 이사 온 청년 중 한 명이다.

최 대표가 밝힌 조합의 꿈은 단 하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민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는 지역을 만들고 싶어요. 지역을 알록달록하게 꾸며서 생기 있는 동네로 만드는 게 꿈이에요."
다음은 최연호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키워드1. 고등학교 음악수업
▲언제, 어떤 계기로 조합 활동을 시작했나.
―원래는 실용음악 전공이고 의정부에서 실용음악학원을 운영 중이다. 초기 조합 이사장님과의 인연으로 이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하게 됐는데, 그때 이사장님께서 조합 활동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의미 있어 보여서 먼저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2018년 8월부터 활동 시작해서 지난해 7월에 대표까지 맡게 됐다.

#키워드2. 터무니 있는 집
▲조합은 어떤 활동을 주로 하나.
―문화예술 사업, 청년주택 관리 사업, 렌털 사업 등을 주로 진행한다. 문화예술 사업은 주로 구에서 버스킹 공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 그럼 며칠 동안 지역을 돌면서 공연하는데, 직접 연주자들을 구하고 음향과 방송 장비 등을 준비해서 공연을 개최한다.

청년주택은 사회투자지원재단이 담당하는 '터무늬 있는 집'을 말한다. 터무늬 있는 집이란 임대료가 비싸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삶의 터전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한 기금을 청년들에게 보증금으로 빌려주고, 청년들이 보증금의 연 4% 이자를 사용료로 납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합에서는 현재 터무늬 있는 집 3호를 관리하고 있다. 저 포함 약 15명의 청년들이 3호에 거주하고 있다.

렌털 사업은 조합의 주된 수입 활동이다. 지역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금이 주로 이 사업에서 마련된다. 지역 축제 등에 조합이 소지하고 있는 음향과 천막 등의 장비를 대여해주는 것이다. 장비를 직접 나르고 세팅까지 해준다.

로컬엔터테인먼트 지역 공연 / 조합 제공
로컬엔터테인먼트 지역 공연 / 조합 제공
#키워드3. 아티스트와 쓰레기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아트사이클링'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마을에 재활용의 의미를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축제를 개최했다. 지역 상인들과 함께 재활용 물품을 판매하고 버스킹 공연도 했다. 공연 후에는 아티스트 인기 투표를 진행했는데, 그때 투표함을 쓰레기봉투로 만들었다. 그래서 주민들이 근처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서 맘에 드는 아티스트 앞에 놓인 쓰레기통에 넣어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서 2년 동안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진행했다. 지역 환경에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아트사이클링을 계기로 환경 이야기를 담은 노래도 만들었다. 제목은 '설 곳을 잃은 어느 북극곰과 가슴이 먹먹한 거북이 이야기'다. 뮤직비디오도 제작했으니 유튜브에서 들어봐 달라.(하하)
#키워드4. "청년, 이것 좀 먹어봐"
▲활동을 수년째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궁금하다.
―다양한 세대의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어서 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공연이나 강연 등 공식 행사를 개최해서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 많아지니 서로 안면을 트게 되고, 옥상 삼겹살 파티 등 다 함께 하는 자리가 늘어나 소통할 수 있게 된 모습이 보기 좋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역을 위한 활동을 했을 때 주민들이 좋아해 주시고 감사 인사 건네주시면 다시 또 일어나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어르신들이 행사 후에 고생했다며 바리바리 싸주시는 반찬, 또 평소에 차 타고 길거리 지나갈 때에도 창문 내려보라며 주시는 음료 한 잔, 그 정이 참 따뜻하고 감사하다.
청년들과 협업해 프로젝트를 완성한다는 것도 의미가 깊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인 청년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협동해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자연스레 메워 주면서 결국엔 완성해 내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다.

#키워드5. 같이 놀자
▲대표로서 조합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청년 일자리 창출과 거주지 마련을 위해 앞으로도 힘쓸 것이다.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작은 일들을 계속할 뿐
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들. 때로는 분노와 슬픔에 얼굴이 찌푸려지는데요, [선인장]은 '선'한 '인'물을 소개하는 '장'입니다.
각박한 세상에 작은 빛이 되는 우리 이웃들을 만나보세요. 여러분들의 따뜻한 제보도 기다립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