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 한은서 빌린 급전 최대, 재정지출 잣대 엄격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08 18:04

수정 2024.01.08 18:04

세계 석학 美 재정적자 위험 경고
한국 더 심각, 세수확보책도 시급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극심한 세수부족에 시달리면서 지난해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려 쓴 돈이 117조원을 넘었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 지출이 크게 확대됐던 2020년 대출액(102조원)보다도 많다.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대정부 일시대출금·이자액 내역'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연말에도 4조원을 빌렸다가 올해 초 갚았다.
대출이 늘면서 정부가 지난해 한은에 지급한 이자액도 1506억원에 달했다.

한은의 정부 대출 제도는 정부가 회계연도 중 세입과 세출 간 시차로 발생하는 일시적 자금부족을 메우기 위한 임시 수단이다. 개인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마이너스통장을 열어놓고 필요할 때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외적으로 급하게 자금조달 역할을 했던 이 제도가 정부의 상시 자금 확보 통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정부가 한은 급전에 급급했던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만성 세수부족 때문이다. 지난해 10월까지 누적으로 정부의 총수입(492조5000억원)에서 총지출(502조9000억원)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0조4000억원 적자였다.

국가채무를 더 이상 늘리지 않는 선에서 돈을 구하는 수단으로 정부는 한은 급전 말고 달리 방법을 못 찾은 것이다. 다급한 상황에서 정부 차입한도는 의미도 없었다. 한은 측은 관행이 고착화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세수가 한 달 뒤 들어온다며 당장 급하다는 정부를 막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한은 대출이 많아지면 시중 유동성이 커져 물가도 압박을 받는다. 가뜩이나 고물가 살얼음을 걷고 있는데 이대로 둘 순 없는 일이다.

세수확충을 위해선 내수가 살아나야 하고 경제가 역동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방위 구조개혁이 필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기업 규제 족쇄를 풀고 노동·복지·연금 수술에 속도를 더 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시급한 과제가 재정지출 거품을 빼는 일이다. 정부의 긴축재정 표방에도 방만한 지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질 선심정책도 걱정거리다.

나라곳간은 텅텅 비고 정부는 한은 급전을 빌리는 지경인데 교육재정교부금이 넘쳐나는 것도 정상으로 볼 수 없다. 학령인구가 줄어 예산이 남아돌자 엉뚱한 곳으로 흥청망청 세금이 흘러갔다는 게 감사원 결과 밝혀진 내용이다. 내국세에 자동으로 연동된 교부금 구조는 전면 수술이 불가피하다.

최근 열린 미국경제학회 2024 연례총회에서 세계 석학들은 재정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석학들은 미국이 재정감축을 못하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2020년 이후 해마다 1조달러 넘는 재정적자를 냈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과신해선 안 된다는 지적까지 나왔는데 기축통화국도 아닌 우리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재정지출에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할 것이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