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왜 살아야 하는지 숨 쉬듯 의문"..은둔형 외톨이의 고백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②]

조유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1 08:27

수정 2024.01.18 09:28

<②고립·은둔 청년 75% "극단 선택 생각">
취업 실패·대인관계 어려움 등 원인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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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것 하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의 삶,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살펴봐야 할까요. 파이낸셜뉴스는 신년 기획으로 일상 뒷편에 숨겨진 문제들을 연속 보도합니다. 이는 사회에 전하는 일종의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파이낸셜뉴스] "모든 사람이 나를 공격적으로 쳐다보는 줄 알아서 못 나갔어요. 16년 만에 사람 많은 곳에 처음 와봐요."
"4년 동안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살았는데, SNS에서만 보던 일상을 나도 누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은둔형 외톨이들이 한 단체가 주최한 모임에 나가, 연신 행복해하며 한 마디씩 내뱉은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하루로 남았다.

복지 사각지대 취약계층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적 관계는 물론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도 심리·정서적 관계를 단절하고 고립된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을 칭한다. 이들은 다양한 원인으로 무욕구와 무기력에 휩싸여 집 밖을 나갈 힘조차 없어서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보낸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은둔형 외톨이가 복지 사각지대의 새로운 취약계층으로 떠올랐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혼자 고립되어 있다가 극단 선택을 하는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7~8월 19~39세 청년 중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54만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조사에 응한 2만1360명 가운데 75.4%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들 중 26.7%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고립·은둔 청년의 자살 생각 및 시도 /박혜정 디자이너
고립·은둔 청년의 자살 생각 및 시도 /박혜정 디자이너

실제로 성인이 된 직후부터 은둔을 시작했던 A씨는 은둔 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살아야 할 이유, 살면 좋은 이유 등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숨 쉬듯 의문이 들었다"라고 고백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이렇듯 스스로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들은 취업, 대인관계, 가족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좌절하고 배제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됐다고 토로했다.

B씨는 취업 실패 때문에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첫 직장에서 상사와 갈등을 겪다 자신감이 떨어진 채로 퇴사했다. 이후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자 열등감이 B씨를 사로잡았다. 다시 취업하려 해도 첫 직장의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지원조차 하지 못했고, 그때부터 집 밖으로 나오기가 두려워졌다. 지인들이 연락해 와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연락을 받지 않았다. 집에서 매일 누워 게임하고 영화 보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그렇게 B씨는 4년을 세상과 단절한 채 살다가 현재는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회복 중이다.

C씨는 원하지 않았던 오랜 해외 생활로 대인관계 어려움을 겪으면서 은둔하게 됐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사업을 따라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됐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C씨에게 언어와 문화 장벽은 친구를 만드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그렇다 할 친구 한 명 만들지 못하고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때부터가 더 큰 문제였다. 한국에서도 C씨는 이방인처럼 여겨진 것이다. 결국 C씨는 대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휴학한 채 긴 은둔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가족관계 때문에 은둔을 시작하게 된 경우도 많다.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지보다 성적 관리와 취업만을 강요받거나 사회에서의 실패를 가정 내에서도 '의지 부족' 등으로 평가받으며 비난받은 경우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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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둔 청년'에 드는 사회적 비용 7조5000억

고립·은둔 청년을 방치할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7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재단법인 청년재단은 청년 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측정하고 청년의 고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 고립의 사회적 비용' 연구를 기획, 그 결과를 발표했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집계된 고립·은둔 청년 비율(3.1%)을 인구 총조사에 나타난 청년 인구에 적용할 경우 고립·은둔 청년 인구는 34만명으로 추산됐다. 연구 결과, 고립·은둔 청년 34만명(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게 연간 약 7조50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경제비용(비경제활동·직무성과 저하·비출산) 7조2000억원 △정책비용(국민기초생활보장·실업급여 등) 2000억원 △건강비용(질병·조기사망·작업손실) 최대 435억원 등으로 추산됐다.

박주희 재단 사무총장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고립청년을 대상으로 사회서비스 등 지원사업을 시행하면 단기 비용은 증가하지만 청년 고립이 완전히 해소될 경우 1인당 연간 약 2200만원의 사회적 비용을 예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재단은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더 많은 청년을 행복하게 하는 길일뿐 아니라 미래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투자"라며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할 정책전달체계와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은둔형 외톨이 80%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방법은?

흔히 사람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은둔형 외톨이는 세상이 두려울 뿐이지,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욕구는 적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8%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비영리 민간단체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더유스' 김재열 대표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은둔형 외톨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구나' '사회는 어쩌면 안전한 곳일지 몰라'라는 인식이 생긴다면 회복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더유스를 통해 은둔 생활을 마치고 단체 후원까지 약정한 D씨가 그 대표적 사례다.

D씨는 더유스가 진행한 은둔형 외톨이 모임에 매주 세 번씩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김 대표를 비롯해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김 대표는 D씨에게 믿을만한 사람을 연결해 주며 직업 체험도 알선해 줬다. D씨는 그곳에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됐고 센터를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회복됐다. 더 놀라운 것은 D씨가 더유스를 후원하고 싶다며 매달 정기 후원을 약정한 것이다. D씨는 당시 후원 이유에 대해 "매번 받기만 하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와 주고받은 전화·문자만으로도 회복 사례

누군가와 주고 받은 전화와 문자만으로 회복된 사례도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제자와 은둔형 외톨이 E씨를 연결해주며 매주 연락하면서 교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지나고 E씨 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대표가 자신의 자녀를 살렸다며 감사하다는 전화였다. E씨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또 일상을 나누는 경험을 통해 회복됐고, 이후 대학교 생활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친구 만들어주기'라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일부 대책에 허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에게는 정서적 교류와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찾아가서 만나고 시간과 재정을 들여 오랜 시간 애정을 쏟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상담사를 붙여준다. 단시간의 상담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은둔형 외톨이의 자립을 돕는 건 공공기관보다는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가 민간단체와 협력해야만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또 누구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다며 이제는 은둔형 외톨이를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누구나 힘들 때 도망가고 싶고 숨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처럼, 언제든 나 또한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이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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