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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놀이공원의 패스트트랙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0 18:22

수정 2024.01.10 18:22

이소영 동화작가
이소영 동화작가
연휴에 놀이공원에 갔다. 놀이기구 하나를 타는 데 장장 3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을 이용한 사람들은 15분 만에 놀이기구에 탑승했다.

"아빠, 저 사람들은 뭐야?"

"비싼 표를 구매했나 봐."

줄 서서 기다리던 아이의 질문에 얼버무리며 대답하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패스트트랙이 가능한 우선탑승권 가격은 일반권의 두배 이상이고 구매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줄 서기 없이 이용 가능한 패스트트랙은 2000년대 중반 연간이용권 구매고객에게 무료로 제공되다가 2023년 8월 31일부터는 대부분의 놀이공원에서 유료로만 시행되고 있다.
무료로 제공하던 혜택을 시나브로 돈으로 사는 특권으로 바꾸며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놀이공원을 나오며 흥분되고 즐거운 기억의 한편으로 찜찜하고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패스트트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찬성 의견과 상대적 박탈감과 물질 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반대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았다. 무엇보다 비용에 부담이 없다면 우선탑승권을 구매하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놀이공원의 패스트트랙에 반대하지만 가능하다면 다음에는 우선탑승권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견과는 다른 행동의지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신념과 행동 간의 불일치를 인지부조화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인지부조화 상태에서 불편감을 느끼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신념이나 행동 중 하나를 바꿔서 부조화를 줄이려 한다고 주장했다.

패스트트랙은 놀이공원에서뿐만 아니라 공항이나 콘서트, 호텔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놀이공원의 패스트트랙은 다른 곳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항공권의 비즈니스석이나 퍼스트석 승객에게 제공되는 패스트트랙은 서비스와 공간에 차이가 있는 상품이다. 이에 비해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는 우선탑승객이나 일반탑승객이나 동일한 가치의 상품을 제공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선탑승객이 놀이기구를 먼저 타면 자연히 일반탑승객의 기다리는 시간은 늘어난다. 우선탑승객이 돈을 주고 사는 시간은 일반탑승객이 줄을 서서 허비하는 시간이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라는 명목으로 고객의 시간을 동의 없이 판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놀이공원의 우선탑승권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사기가 힘들다며 어렵게 구매했다는 성공담이 인터넷에 즐비하다. 이런 게시물에는 누구나 놀이공원의 우선탑승권을 원하고 있고, 돈만 있다면 누구나 패스트트랙을 선택할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숨어 있다.

2021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76%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73.8%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게시하는 비율은 10% 안팎이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의견이 모두의 생각이고, 이것이 주류라고 착각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에 견해가 같으면 63.2%가 '좋아요'를 누르며 동조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자료를 찾다 보니 다음 놀이공원에 갈 때도 우선탑승권은 구매하지 말아야겠다고 태도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놀이공원을 찾는 이유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혼자서 여러 놀이기구를 많이 타는 것이 더 즐거운 것인지 알 수 없다. 패스트트랙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주로 교육이나 직업 분야에서 더 빠르게 학위를 받으려 하거나 승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즐거움이 목표인 놀이공원에서의 패스트트랙은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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