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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집밥이 그리운 출향인들에게 헌정한 추억 조각

최두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1 14:00

수정 2024.01.11 14:00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서평] 집밥이 그리운 출향인들에게 헌정한 추억 조각


[파이낸셜뉴스] "그때는 몰랐다. 그 많던 별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 동네에 가로등이 생기고 각 집마다 형광등이 설치됐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지 별을 보지 않게 됐다. 한가로이 별 구경을 할 짬이 없었던 듯하다. 이제는 별을 보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
(저자 택리지)

바쁜 현대사회,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하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씩 품을 만한 그리움을 담은 책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가 지난 10일 발행됐다.

기억은 뇌에서 과거의 경험을 부호화해 불러오는 능력이다. 어떤 사건이 기억으로 저장되기 위해서는 뇌 전체에 걸친 뉴런들에 인코딩 되는 과정을 거친다. 워낙 복잡하고 미묘한 과정이라 현대과학에 이르기까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추억도 과학의 영역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미완성인 채로 태어나는데 태어난 후 10여년 간의 결정적 시기를 거치면서 시냅스를 완성한다. 고향이 그리운 이유는 뇌가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뇌 기능을 완성시키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시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책은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 만에 읽을 수 있는 무겁지 않은 분량이다. 한 두 페이지의 글을 엮어 만든 옴니버스 형식으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고향에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책을 읽을수록 슴슴한 매력이 느껴진다. 자꾸만 손이 가는 튀밥 같은 책이랄까. 식사예절과 순서를 신경써야 하는 품격 있는 요리와는 거리가 멀다. 예쁘게 차려진 디저트 같은 글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조미료는 없지만 달고 짜고 쓰고 신맛이 느껴지는 오묘한 매력을 가졌다.

네 번째 '가족' 챕터의 첫 번째 글인 '비행기 장난감'에서는 고향의 정취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동시에 전해진다. 그 밖에 '폭죽의 추억'과 '가족사진'이 인상 깊었다.

40여년 전 일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저자의 기억력도 눈길을 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을 곱씹으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나 1980년대 태어나지 않았고, 경북 선산군 옥성면이 고향이 아니라도 코끝이 찡해지는 건 우리 모두에게 그리운 고향이 있기 때문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았다. 결국 사람은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살 수밖에 없다. 기록은 기억으로 남고 추억이 되면서 하나의 인생으로 완성된다. 사라질 육체와 불완전한 정신을 지탱해 주는 기억은 어쩌면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


우리네 삶은 그냥 흘려보내기에 너무 아쉽다. 가끔 이유 없이 울고 싶은 출향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다른 이의 기록이 나의 깊은 내면에 말을 거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dschoi@fnnews.com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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