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530억원 뜯고 1인당 350만원... '기습공탁'하려던 집사, 검찰에 '들통'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2 16:09

수정 2024.01.12 16:25

고수익 유도로 교인들에게 530억 편취후 꼼수공탁
檢, 선고연기 요청 후 피해자 진술 확보
法, 기습공탁 언급하며 징역 15년 선고
서울중앙지검.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교인들로부터 5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집사가 재판 과정에서 ‘기습공탁’으로 감형을 노리다검찰에 가로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A집사는 피해자들에게 각 350만원씩을 공탁했는데, 이들은 이미 1인당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00억원대의 돈을 뜯긴 상태였다. 검찰은 A집사의 공탁을 확인한 후 선고기일을 뒤로 미루고 피해자들의 공탁금 수령 거부의사를 재판부에 전달해 결국 중형을 이끌어냈다.

수천~100억원 피해자에 1인당 350만원 공탁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집사 신모씨(66)에게 최근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신씨는 2016년 1월∼2021년 7월 '기업에 긴급자금을 빌려주거나 정치자금 세탁 등에 사용해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교인 53명을 속여 총 530억원 상당의 돈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액은 1인당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100억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재판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허태훈 검사(41·사법연수원 41기)는 “실제로 넉넉하지 않은 피해자분들도 많아서 생활고나 가정 관계가 파탄이 났다는 탄원도 제출됐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신씨는 지난해 11월 말경, 변론이 종결된 후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들에게 각각 350만원을 형사공탁했다.

형사 공탁이란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법원의 공탁소에 일정 금액을 맡겨 피해회복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통상 재판에서 감경요소로 작용하는데, 지난 2022년 12월부터 특례제도가 시행돼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몰라도 공탁이 가능해진 점을 악용한 것이다. 선고 직전 공탁을 하게 되면 피해자는 공탁 사실을 뒤늦게 전달받아 선고 전까지 피고인에 대한 엄벌 처벌을 밝히기 어렵다.

檢 선고 연기 요청 후 피해자 의사 반영
검찰은 A 집사의 공탁 사실을 확인한 뒤 즉시 재판부에 요청해 선고기일을 미뤘다. 공탁금이 걸린 피해자들에겐 공탁금 수령 의사 유무, 처벌 의사 유무에 관한 진술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중앙지검 양형조사실에 조사를 의뢰했다.

양형조사실에서는 전화 진술을 확보해 "피공탁자 26명 전원은 피해금에 비해 공탁금이 현저히 적고,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A 집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판부에 ‘피해액에 턱없이 부족한 소액을 공탁함으로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깊은 상심을 안겨줬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했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달 신씨에게 검찰의 구형과 같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 신씨의 기습공탁이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심을 안겨줬다는 점을 양형사유로 언급했다.

허태훈 검사는 “재판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계속 방청을 오는 모습 등을 통해 피해가 상당하다는 것과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허 검사는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후 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 여부가 반영되지 않는 문제점들을 일선 공판 검사들이 상당히 체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적극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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