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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번엔 예멘 수렁에 빠져드나..."후티반군에 명분 줬다"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4 03:19

수정 2024.01.14 03:19

[파이낸셜뉴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13일(현지시간) 이틀째 예멘 후티반군 지역을 공습한 가운데 12일 후티반군이 장악한 수도 사나에서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공습은 지난해 평화협상 뒤 무장투쟁 명분을 잃은 후티반군에게 새로운 주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AP뉴시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13일(현지시간) 이틀째 예멘 후티반군 지역을 공습한 가운데 12일 후티반군이 장악한 수도 사나에서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공습은 지난해 평화협상 뒤 무장투쟁 명분을 잃은 후티반군에게 새로운 주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AP뉴시스


미국과 영국이 13일(이하 현지시간) 이틀째 예멘 후티반군 지역 공습에 나섰다.

제대로 된 정보 없이 공격하기 쉬운 목표들을 공습한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미국이 영국과 함께 공습을 이어가면서 후티반군이 원하던 것을 안겨줬다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라는 영원한 적


이란과 같은 이슬람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한 분파인 자디를 종교적 기반으로 하는 후티반군은 2015년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하면서 중동지역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아랍국가들이 예멘 내전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후티반군을 지원했다.

그러나 지난해 사우디가 유엔과 함께 예멘 평화협상을 시작하면서 반군은 무장 투쟁의 근거가 약해졌다.

이런 와중에 홍해를 지나가는 선박들을 향해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과 영국의 공습은 후티반군에 명분을 줬다.

내부 불만을 돌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외부의 적을 만들어 준 것이다.

후티 지도자 모하메드 알리 알-후티는 12일 사나의 사빈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누가 여러분의 나라를 공격했는가?"라고 물었고, 집회에 참가한 수만명 시위군중은 "아메리카!"라고 답했다. 이제 후티반군의 주적이 미국이 된 것이다.

후티반군은 순교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 학장이자 중동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켄덜 교수는 후티족은 지속적인 대규모 공습에 익숙해 미국의 공습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켄덜 교수는 또 후티반군은 미국이 지역 긴장을 확산하거나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갈등을 고조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 역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이번 공습은 후티반군을 희생을 치른 영웅이자, 영웅적인 순교자로 만들어주고 있다면서 "후티반군은 갈등을 멈출 이유가 없으며 수많은 희생을 감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켄덜은 미국의 공습으로 수많은 예멘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면서 후티반군은 이를 주민들의 반감을 끌어올리고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예멘에서 "전쟁은 삶의 방식이 됐다"면서 "시민들을 위해 번영을 이루는 통치는 낯선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선박 4분의1,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으로


후티반군 공격은 홍해 해상로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사람 2만3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후티반군은 이스라엘과 연계되거나 전쟁과 연관된 선박들을 공격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이때문에 전세계 컨테이너 화물 20% 이상이 지나가는 홍해의 바브 알-만데브 해협과 수에즈운하 항해가 차질을 빚고 있고, 일부는 희망봉으로 우회하고 있다.

미국 주도 다국적군 공습은 후티반군의 홍해항로 훼방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항로 변경을 촉발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첫번째 공습 뒤 선박 약 16척이 항로를 돌렸다.

그렇다고 홍해 항로가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다.

덴마크 컨설팅업체 베스푸치해상에 따르면 13일에도 약 41척이 이 해협을 통과했다. 공습 전 50대 수준에 비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홍해항로를 이용하는 배들이 많다.

영국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후티반군의 공격으로 해상 운임이 뛰었고, 선박 약 4분의1이 희망봉 등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깜깜이 공습


미기업연구소(AEI)의 대테러 전문가 캐서린 지머맨은 미국이 후티반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지머맨에 따르면 미국은 예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후티반군의 군사적 능력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의회에 보낸 서한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 예멘 대사관을 폐쇄한 뒤 소규모 군인들만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군인 역시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다. 후티반군이 장악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머맨은 "실질적으로 미국은 후티반군이 스스로 능력을 과시할 때에만 군사적 능력을 확인할 수가 있다"면서 미 정보당국은 후티반군 무기가 어디에 주로 숨겨져 있는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주도의 공습도 지금까지는 주로 전자신호가 감지되는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중동경험이 많은 더글러스 런던도 미국은 최근 들어서야 첩보위성, 도청장비 등을 활용해 예멘을 감시하기 시작했다면서 사람이 정보를 캐는 휴민트도 전개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예멘이 부족중심 사회로 분권적인데다 후티반군이 매우 배타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 휴민트 확보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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