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취객 물도 떠다 줘야 할 판"..경찰 '유죄' 판결에 불만 폭주

조유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6 15:39

수정 2024.01.16 15:39

집 앞까지 데려다준 '주취자' 한파에 사망
경찰관이 유죄 판결 받자 내부 반발 터져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지난 2022년 9월 10일 오전 제주 연동지구대 경찰관들이 순찰 중 노상에 주취자가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귀가 조처하고 있다. 2022.09.10. /사진=뉴시스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지난 2022년 9월 10일 오전 제주 연동지구대 경찰관들이 순찰 중 노상에 주취자가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귀가 조처하고 있다. 2022.09.10.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경찰관이 집에 데려다준 주취자가 한파에 숨진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경찰관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경찰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집 앞까지 데려다줬는데.. '업무상 과실치사'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최근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30일 오전 112 신고를 받고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A씨를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야외 계단에 앉혀 놓고 돌아가 A씨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이 같은 판결 내용이 지난 14일 알려진 이후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지휘부에 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법원이 일선 치안 현장의 고충을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고 현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계적 판결'을 한 것 아니냐는 취지다.

업무상 과실죄는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를 태만히 한 것이다. 생명·신체 등에 위험이 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사람을 다치거나 숨지게 했을 때 적용한다. 경찰과 소방관 등이 대표적 직군이다. 위험 발생이 뒤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이에게 고도의 주의 의무를 부과한 것인데 문제는 통상의 과실범에 비해 형이 무겁다는 점이다.

"안방까지 가서 이불 덮어줘야 하나" 자조

파출소에서 근무하며 주취자 신고 처리를 많이 경험했다는 한 경찰관은 "신고받고 가면 자기가 알아서 갈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을 보고 현장 조치를 마무리하는 게 통상적이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경찰관은 주취자를 다세대 주택까지 데리고 갔으나 정확한 호실을 몰라 대문 안 계단에 놓고 귀소했다. 통상적인 주취자 처리였다"라면서 "경찰청은 말단 직원들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다른 경찰관은 댓글에서 "주취자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서 귀가한 것을 왜 경찰에게 책임 지우나. 아주 나쁜 판결의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주취자를 어디까지 모셔다드려야 업무상 과실치사를 면할 수 있나", "앞으로는 주취자 집에 안방까지 가서 이불 덮어주고 물도 떠다 주고 나와야 한다"라는 자조 섞인 댓글도 달렸다.

술 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찰의 보호조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른다. 해당 법 4조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한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특별한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 외 소방 당국,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 체계나 역할 분담도 명확하지 않다.

지난해 경찰청은 주취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 보호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 등을 담은 '주취자보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법안들은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있다.

일선 경찰관들의 불평이 나오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전날(15일) 주재한 주간업무 회의에서 "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달라"라고 말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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