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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전쟁으로 피난갈 때 〇〇〇을 먹어서 굶주림을 면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20 06:00

수정 2024.01.20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명나라때 주숙(朱橚)이 저술한 <구황본초(救荒本草)>에는 기근이나 흉년 동안에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그림과 함께 복용법을 정리해 놓았다. 여기에는 산흑두(山黑豆)라고 해서 검정콩도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때 주숙(朱橚)이 저술한 <구황본초(救荒本草)> 에는 기근이나 흉년 동안에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그림과 함께 복용법을 정리해 놓았다. 여기에는 산흑두(山黑豆)라고 해서 검정콩도 기록되어 있다.

먼 옛날 또다시 북쪽에서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마을 사람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몇 년 전에도 짧은 피난 길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군이 몰려온다는 소문이다. 몇 달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곡식이라는 것은 생명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긴 시간동안 곡기를 끊게 되면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가거나, 혹은 죄를 지어 도망쳐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은거하거나, 혹은 깊은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가 있어야 한다면 굶어 죽지 않으려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을에서는 보통 흉년이 들었을 때는 곡식 이외의 것으로 배고픔을 면해 왔다. 이러한 것들로는 솔잎(송엽), 측백나무잎(측백엽), 둥굴레뿌리(황정), 천문동, 삽주뿌리(출), 마(산약), 칡(갈근), 하수오(백수오), 느릅나무의 껍질(유백피), 복령, 도토리(상실), 밤(율), 연근(우), 잣(해송자), 들깨, 개암열매 등으로 가급적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먹었다. 마을에는 의원이 한 명 있었다.

의원은 “의서에 보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처방들이 있으니 그것을 만들어서 피난 길에 오르면 굶어 죽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 뭘로 만드는 것이 좋겠소?”하고 물었다.

의원은 “검정콩이 좋겠습니다. 모두 집에 있는 검정콩을 모조리 가져오시오. <구황본초>에서도 검정콩은 좋은 구황식품이라고 했으니 피난길에 배고픔을 견디게 하는 효과가 클 것이요.‘라고 했다.

<구황본초(救荒本草)>는 명나라때 주숙이 지은 서적으로 ‘검은콩은 굶주림으로부터 구한다. 싹과 잎이 어릴 때 채취해서 데치거나 삶아서 물에 일궈서 쓴맛을 제거한다.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를 해서 먹는다. 콩깍지가 생기면 콩깍지를 채취해서 삶아 먹는다. 혹은 두들겨서 얻은 콩을 먹어도 모두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우선 마을에 있는 검은콩은 모두 구해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의원의 지도하에 검은콩 1되의 껍질을 제거하고 관중(貫衆), 감초 각 1냥, 복령, 창출, 사인 각 5돈을 썰고 찧은 다음 물 5잔에 검은콩 등을 함께 넣고 약한 물로 달였다. 물이 다 졸아들면 다른 약은 골라내어 버리고 검은콩만 취하여 진흙처럼 찧어서 가시연밥만 한 크기로 만들었다. 배가 고플 때면 매번 이 환을 한 개씩 먹는 것이다.

관중(貫衆)은 마치 고사리처럼 생겼다. 우리말로는 회초미라고 부른다. 관중은 늦가을까지도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뿌리를 캐서 삶아 먹어서 구충제나 해독제로 사용했다. 옛날에 말이나 소가 꼴풀을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때에는 꼴풀을 끓일 때 관중 1~2매를 같이 삶아 오래도록 먹이면 충(蟲)이 저절로 빠져나왔다.

여기에 감초를 넣어서 해독기능을 높였다. 검은콩과 감초는 감두탕(甘豆湯)의 재료가 되는데, 각 5돈씩 끓여서 먹으면 백약(百藥)과 백물(百物)의 독을 푼다고 했다. 그리고 복령과 창출, 사인을 추가한 것은 곡식을 제외한 이름 모를 초근목피를 먹었을 때 배탈을 막고자 한 목적이었다.

의원은 “이렇게 검은콩으로 환을 만들어 먹으면 피난 길에서 푸성귀를 아무거나 먹어도 종일 배불리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비록 평소에는 알지 못하던 이상한 풀이나 나무 종류라도 중독되는 일이 없을 것이요. 그리고 풀뿌리나 나무껍질조차도 마치 밥을 먹는 것처럼 달게 느껴질 것입니다. 의서에는 이 환을 피난대도환(避難大道丸)이라고 했으니 피난할 때 챙기면 길을 크게 밝혀준다는 의미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을 피난대도환을 가능한 많이 만들어 식구 수대로 나눴다. 피난대도환을 만들다 보니 복령, 백출이나 사인이 모두 동이 났다.

그러자 의원은 “검은콩과 관중 뿌리만을 삶아서 환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검은콩 1되를 곱게 썬 관중 1근과 함께 푹 삶아 검은콩의 향이 진하게 나면 다시 여러 번 뒤집어 펴주고, 관중의 나머지 즙이 다 마르고 나면 관중 찌꺼기는 까불러서 버리고 검은콩만 취하여 빈속에 매일 5~7알씩 먹으면 됩니다. 이 환 또한 며칠만 먹으면 다시는 음식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도가(道家)에서 곡식을 끊고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을 때도 검은콩관중환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 환만 있으면 몇 개월 동안 도를 닦는데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고 많은 식량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일종의 단식이나 금식을 하고자 할 때도 먹기도 했다.

사실 검은콩만 익혀 먹어도 곡식을 끊고서도 어느 정도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가능했다. 검정콩을 볶아 익혀서 먹으면 양식을 대신할 수 있었다. 알이 꽉찬 검은콩 21알을 골라 익혀서 주물러서 매일 아침 찬물로 삼키면 된다. 간간이 곡기를 하루정도씩 끊도록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먹으면 그럼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갓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응애~ 응애~” 피난길에는 배고픔도 문제지만 간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문제였다. 간혹 피난 때 아이들이 울음소리 때문에 적들에게 발각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난 아이들이 울음을 멎지 않을 때는 적들이 들을까 염려되어 길옆에 버리고 가는 부모들까지도 있었다. 어느 부모가 그러고 싶겠느냐마는 주위 사람들의 눈총에 시달려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우는 아이들을 안고 있는 엄마들은 차갑게 쳐다보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의원은 갓난 아이의 엄마들에게 솜뭉치와 감초 달인 물을 따로 챙겨 주었다. “아이들이 업고서 피난을 갈 때 아이의 입에 감초물을 적셔서 물리시구려. 그럼 아이가 울지 않을 것이요.”라고 안심을 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피난 길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진지 곁을 지나게 되었다. 간난 아이들을 업은 엄마들은 서둘러 솜뭉치를 감초물에 적혀서 아이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단맛이 나는 감초물을 빨면서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솜 때문에 말소리도 내지 못했다. 솜은 부드러워서 아이의 입이 상하지도 않게 했다. 이렇게 솜뭉치와 감초물이 있어서 안심하고 피난길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배고픔과 지치고 힘듦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식구 수대로 나눈 피난대도환 등을 먹으면서 며칠을 걸었다. 많이들 굶주렸고 지쳐있었다. 그래도 남자나 젊은이들은 견딜만 했으나 너무 어리거나 여자나 노인들은 힘에 부쳤다.

사람들은 달포 정도를 걸어서 산속 깊은 곳으로 왔다. 그곳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난리가 난 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그곳에는 쌀과 곡식이 넉넉했다. 사람들은 모두 굶주려서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가장 지치고 허기가 진 사람들에 밥을 얻어 먹이고자 했다.

그때 의원이 나섰다. “잠시 멈추시오. 굶주려 파리해서 죽게 된 사람에게 갑자기 밥을 먹이거나 뜨거운 음식물을 먹게 하면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럴 때는 먼저 장즙(醬汁)을 물에 타서 마시게 한 다음에 식은 죽을 주고 점차 기력을 차리기를 기다려서 점점 죽(粥)과 밥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흔하게 하는 단식 후에 회복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의 배려로 그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물다가 무사히 자신들의 마을로 되돌아갔다. 의원이 알려준 피난대도환은 나중에 흉년이 들었을 때도 만들어 먹었고, 밥을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쉽게 찌는 사람들에게 식욕을 억제할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검정콩은 여러모로 식량이자 약이 되었다.

* 제목의 〇〇〇은 ‘검정콩’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구황본초(救荒本草)> 山黒豆. 救飢, 苗葉嫩時, 採取, 煠熟水淘, 去苦味, 油鹽調食, 結角時, 採角, 煮食, 或打取豆, 食皆可. (산흑두. 굶주림을 구한다. 싹과 잎이 어릴 때 채취해서 데치거나 삶아서 물에 일궈서 쓴맛을 제거한다.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를 해서 먹는다. 콩깍지가 생기면 콩깍지를 채취해서 삶아 먹는다. 혹은 두들겨서 콩은 얻어서 먹어도 모두 좋다.)
<동의보감> 〇 避難大道丸. 黑豆 一升 去皮, 貫衆, 甘草 各一兩, 茯苓, 蒼朮, 砂仁 各五錢, 剉碎, 用水五盞, 同豆慢火熬煎, 直至水盡, 揀去藥, 取豆擣如泥作芡實大, 磁器密封, 每嚼一丸, 則恣食苗葉, 可爲終日飽. 雖異草殊木, 素所不識, 亦無毒甘甛, 與進飯粮一同. 一方, 黑豆一升, 貫衆 一斤細剉, 同煮豆香熟, 反覆令展盡餘汁, 簸去貫衆, 只取黑豆, 空心, 日啖 五七粒, 任食草木無妨, 忌魚肉, 菜果, 及熱湯. 數日後, 不復思食. (피난대도환. 껍질을 벗긴 검정콩 1되, 관중, 감초 각 1냥, 복령, 창출, 사인 각 5돈을 썰고 부수어 물 5잔에 콩과 함께 약한 불에 물이 사라질 때까지 졸인다. 약을 골라내고 콩을 질게 찧어 검실만 하게 환을 만들어 사기그릇에 밀봉한다. 이것을 1알씩 먹고 식물의 싹이나 잎을 마음대로 먹으면 하루종일 배가 부르다. 비록 평소에 알지 못했던 이상한 풀이나 나무라도 독이 없어지고 밥을 먹는 것처럼 달다. 또는 검정콩 1되, 관중 1근을 얇게 썰어 콩내가 날 정도로 함께 달이고 반복해서 눌러 남은 즙을 다 뺀다. 키로 까불러서 관중을 제거하고 검정콩만 취해 하루에 5~7알씩 빈 속에 먹는다. 초목의 싹이나 잎을 마음대로 먹어도 무방하지만, 생선, 고기, 채소, 과일, 뜨거운 물을 피한다. 먹은 지 며칠이 지나면 음식 생각이 나지 않는다.)
〇 避難止小兒哭法. 用綿作一小毬略, 使滿口而不致閉其氣. 以甘草煎湯, 或甛物, 皆可漬之, 臨時, 縛置兒口中, 使嚥其味, 兒口有物實之, 自不能作聲, 而綿軟不傷兒口. 盖不幸而遇禍難, 啼聲不止, 恐爲賊所聞, 棄之道傍, 哀哉. 用此法, 活人甚衆, 不可不知. (피난 갈 때 소아의 울음을 멎게 하는 방법. 솜을 작고 둥글게 뭉쳐서 입에 채우되, 숨이 막히지 않게 한다. 그리고 감초 달인 물이나 단 것으로 적신다. 위험할 때 아이의 입에 묶어 놓아 그것을 빨게 한다. 아이의 입에 물건이 채워져 있으니 저절로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고 솜은 부드러워서 아이의 입이 상하지도 않는다. 불행히 난리를 만나 울음이 멎지 않을 때는 적들이 들을까 염려되어 길 옆에 버릴 때가 있으니, 아! 슬프구나. 이 방법을 써서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 이것을 모르면 안 된다.)
<의림촬요> 〇 黑豆. 炒熟,以棗肉同搗之,爲麨,可以代粮. 左元放救荒年法. 擇取雄黑豆三七粒,生者,熟挼之,令煖氣徹豆心,先一日不食,次早以冷水呑下. 魚肉菜果,不復經口,渴則飮冷水. 初雖小困,十數日後,體力壯健,不復思食矣. (검은콩. 볶아 익혀서 대추육과 함께 찧어서 밀기울처럼 해 먹으면 양식을 대신할 수 있다.
좌원방의 흉년 구휼법. 튼실한 검은콩 날것 21알을 골라 익혀서 주물러 따뜻한 기운이 콩의 가운데까지 뻗치게 한 다음 먼저 하루는 밥을 먹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찬물로 삼킨다. 생선이나 고기, 나물, 과일은 다시는 입에 대지 말고 갈증이 나면 찬물을 마신다.
처음에는 조금 괴로워도 십 수일 후에는 체력이 강건해지고 다시는 음식 생각이 나지 않게 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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