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암표의 경제학, 암표의 범죄학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7 18:35

수정 2024.01.18 08:17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부국장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부국장
요즘 공연계가 암표 문제로 시끄럽다. '벚꽃 엔딩'으로 유명한 가수 장범준은 암표가 기승을 부리자 이미 판매한 티켓을 일괄 취소하고 추첨방식으로 표를 다시 팔았고, 성시경은 매니저와 함께 온라인 암표 단속에 나서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아이유는 암표 거래를 신고할 경우 자신의 공연 티켓을 무상 제공하는 일명 '암행어사'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했다. 지난 16일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가 '대중음악 공연산업의 위기, 문제와 해결방법'을 주제로 국회에서 정책세미나를 급하게 연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암표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359건에 불과했던 대중음악 공연 암표 신고건수는 2021년 785건, 2022년 4244건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통계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최근 상황 등을 감안하면 암표로 인한 피해사례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티켓 사기가 너무 어렵다" "500만원짜리 공연 티켓이 말이 되느냐"는 팬들(소비자들)의 아우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암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암표야말로 자유시장경제의 교과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대 석좌교수인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암표 시장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고, 그걸 규제한다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좀 단순화한 느낌이 있지만, 이들의 논리는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내고도 K팝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A와, K팝을 좋아하긴 하지만 10만원 이상의 돈을 내고 공연을 보고 싶진 않다는 B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공교롭게도 둘 다 피케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이라는 뜻)에 참여해 A는 티켓을 구매하지 못했고, B는 운좋게 티켓을 확보했다. 그래서 B가 A에게 티켓을 50만원에 되팔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A는 손해를 본 걸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왜냐하면 A는 100만원을 낼 용의가 있었기 때문에 50만원의 이득을 얻은 셈이고, B는 40만원의 소득이 생겼기 때문에 효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걸 좀 어려운 말로 '지불용의와 효용가치'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한 시장교란 행위와 이를 이용한 부당이득의 문제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확보한 암표는 매점매석을 통해 타인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불법적 요소가 다분하다. 공정거래 질서를 파괴한 범죄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자동반복 입력방식의 매크로는 클릭 한 번으로 수천명을 대신할 수 있어 타인의 이익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해 일반인의 사이트 접속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암표상을 제재하는 현행법(경범죄처벌법)은 아예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고, 오는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개정 공연법도 애매한 부분이 많아 암표 거래를 완전히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암표 거래를 통해 발생한 이득이 해당 산업에 재투자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문제다.
부당이득이 산업과 무관한 암표상들에게 흘러들어갈 뿐 아니라, 통상 이들은 공연 직전 판매되지 않은 티켓을 취소해버리기 일쑤여서 아티스트나 제작사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암표로 한껏 부풀려진 티켓 가격은 공연 생태계마저 교란시켜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암표의 경제학이 일부 학자의 주장처럼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보다 면밀한 법과 제도 정비가 시급한 까닭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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