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사람 살리려 환자 돌봤는데" 소송 휘말리는 의사들[필수의료가 무너진다<4>]

정지우 기자,

최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18 15:51

수정 2024.01.18 15:51

갑질·소송·폭력, 쫓아내는 요소 산적
부모 갑질에 문 닫는 소아과
"사람 살리려 환자 돌봤는데" 소송 휘말리는 의사들[필수의료가 무너진다&lt;4&gt;]

[파이낸셜뉴스] #. 지난 2017년 12월 15일. 서울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4명이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검찰은 의료진이 오염된 영양제를 투여한 것을 사망 원인으로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5년간 재판이 이어졌다. 1·2심 법원은 의료진이 감염관리 주의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과실은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신생아들이 사망했는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난 2022년 말에는 대법원도 무죄를 확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동 병원장은 "재판 결과를 떠나 아이 부모에게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면서 "다만 이 사건 이후로 의사들도 많이 위축됐다. 후배들 사이에선 소아과 기피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 지난해 5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이 올린 글에 따르면 한 소아과 의사는 중이염이 의심되는 아이 귀를 보기 위해 아이 귀지를 먼저 제거했다가 엄무상과실치상죄로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했다. 아이 귀에서 피가 났다는게 이유였다. 임 회장은 "이런 식이라면 이 땅에 소아과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잇따르는 소송위험과 일부 부모들의 민원 남발 행위가 의사들의 소아과 기피현상을 가속시키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8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일선 의료인들은 일선 의료인들은 몇몇 부모들의 갑질, 무분별한 소송, 환자 또는 부모의 폭력·협박, 성희롱·추행 등도 필수의료 분야 업무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토로한다.

"피소되면 장기간 심리적 위축"
일선 의료계에선 다른 과에 비해 소아과는 소송 리스크가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어린 환자의 경우 성인에 비해 감염, 쇼크 등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 소아과 의사는 아동 백혈병 환자를 치료했으나 이 환자는 항암치료 수술 도중 쇼크로 사망했다.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이 의사는 1~2심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19일 충북대 한 행사에서 소아과 등 필수의료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꼽으며 “정부가 책임보험 시스템을 만들어 (의료진의) 형사 리스크를 완화해 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의료분쟁에 대한 의료진의 법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법무법인 중주의 김형주 손해배상전문변호사는 “의사가 진료나 수술을 하다가 발생한 피해에 대해 피소되면 죄의 성립이나 손해배상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심리적으로 위축을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손해배상소송은 수년간 진행되고 1심에서 3심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흔한데 의사들이 오랜 기간 송사에 엮여 본래 의료 업무에도 지장을 많이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가 응급실이나 소아과 등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져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부모 갑질에 문 닫는 소아과
부모의 지나친 행동으로 고충을 호소하는 소아과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소아과에서 아이 엄마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 보호자가 5살 딸의 맨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댄 소아과 의사에게 “성추행”이라는 취지의 항의를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치과 의사가 자신의 딸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며 불만을 품고 소아과 의사를 찾아가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한 소아과 의원은 결국 문을 닫았다. 이 의원은 혼자 진료를 받으러 온 9세 아이를 “보호자와 함께 오지 않았다”며 돌려보냈는데, 아이의 부모가 악성 민원을 넣은 탓이라고 주장했다.

응급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2021년 6월 의정부 지검은 가슴 통증으로 병원 응급실에 이송됐지만 진찰을 위해 기다려 달라는 요청에 격분, 응급구조사에게 주먹을 휘두른 A씨를 기소했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대전지검 논산지청은 작년 5월 퇴원하라는 의사에게 폭행을 행사한 B씨를 법정으로 넘겼고, 징역 10월 판결을 받도록 했다.

검찰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대안을 마련중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17일 구급·구조 소방대원, 응급의료인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할 것을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응급 의료인에 대한 폭력 행위는 정작 위급상황에서 국민이 적시에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설명했다. 현행 의료법은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응급의료를 방해만 해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jjw@fnnews.com 정지우 최우석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