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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보다 경제 잘했다"… 트럼프가 자신만만한 이유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21 19:09

수정 2024.01.21 19:09

①'살만했던 美' 향수 자극
물가상승률 임기 중 연평균 2%
연준 기준금리는 1~2%대 관리
②이민자에 대한 공포심 활용
"마약과 범죄의 온상" 인식 팽배
미국서 가장 중요한 문제 떠올라
③활력있는 이미지로 전환
"바이든보다 젊다" 밀어붙이며
상대편 유권자 표심 끌어모아
"바이든보다 경제 잘했다"… 트럼프가 자신만만한 이유
미국의 45대 대통령을 지냈던 도널드 트럼프는 2021년 1월 20일, 후임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취임식을 건너뛰고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집으로 가는 전용기에 올랐다. 그는 기지까지 따라온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올 거다"고 말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47대 대통령 선거를 약 10개월 앞둔 시점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첫 공화당 경선 1위를 차지하며 백악관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미 역사상 이미 물러난 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사례는 1892년 대선에서 그로버 클리블랜드(22·24대 미 대통령)가 승리한 이후 132년 동안 없었다.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하는 배경에는 트럼프 시대에 대한 향수, 이민자에 대한 불만, 바이든과 비교되는 이미지가 있다.

■'살만했던' 트럼프 시대의 향수

트럼프는 16일(이하 현지시간) 유세에서 대선 투표일을 언급하며 "올해 11월 5일 '트럼프 경제호황'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비영리 경제기관인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09년부터 2020년 2월까지 128개월 연속 성장해 역대 최장 경기 확장을 기록했다. 미국의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2018년 6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트럼프 시대의 경제 성장이 취임 전 전망치와 유사하며 해외 경제의 호황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 트럼프 임기의 3년간 실질 GDP 성장률은 연간 2.2~3%로 전임자와 비슷했다. 2019년은 트럼프 임기 중 연간 실업률(3.7%)이 가장 낮았지만 지난해(3.6%)보다 높았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기억하는 트럼프 시대는 다르다. 미국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트럼프 임기 중 연평균 약 2% 수준이었으나 코로나19를 겪은 2021년에는 7%에 달했다. 2022년 6월에는 41년 만에 가장 높은 9.1%를 기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를 잡기 위해 트럼프 임기 당시 1~2%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22년 만에 최고 수준인 5.25~5.5% 구간까지 올렸다. 미국인의 필수품인 휘발유 가격은 트럼프 임기 중 가장 비쌌던 2018년에도 연평균 갤런(3.78L)당 2.72달러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지난해 3.52달러까지 뛰었다. 그 결과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높은 물가와 은행 이자 때문에 이중고를 겪게 됐다.

FT가 지난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1000명 가운데 지지정당이 없는 유권자의 36%는 공화당 대선 후보 중 경제 분야를 맡긴다면 트럼프를 가장 신뢰한다고 밝혔다.

■불법 이민자가 두려운 미국

미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12월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01명 가운데 16%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민'이라고 답했다. '정부 및 리더십 부족'이라고 답한 비율과 함께 공동 1등이었다. 이는 경제 전반(14%)이나 높은 물가(12%)라고 답한 비율보다 높았다. 갤럽은 지난 2022년 4월 발표에서도 미 성인 1017명 가운데 응답자의 60%가 불법 이민자를 우려한다고 답했다며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고 전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의하면 미 정부의 회계연도(전년도 10월~9월) 기준으로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인 2021년에 미 남서부 국경에서 불법 이민자를 적발한 건수는 165만9206건이었다. 적발 건수는 2022년에 220만6436건으로 늘었지만 2023년에는 204만5838건으로 되레 줄었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11월 발표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숫자는 1050만명으로 2017년과 거의 같았다.

미국인들이 실제 숫자보다 불법 이민자 유입 자체를 걱정하는 이유는 이들이 미국에서 마약과 범죄를 퍼뜨린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갤럽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민자가 마약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응답한 비율은 55%였다. 이는 이민자가 각종 사회문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묻는 질문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범죄를 악화시킨다고 답한 비율은 47%로 2위였으며 경제 전반의 악영향을 지적한 비율도 38%로 3위였다. 미국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인 과다 복용에 따른 사망자 숫자가 2016~2021년 사이 약 4배 증가했다. 남부 국경지역의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이 이러한 마약 유통과 기타 범죄의 통로가 된다며 불법 이민자 억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임기 중에도 이민자 억제를 강조했던 트럼프는 미국 사회에서 더욱 강력해진 이민자 공포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9일 "불법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9월에도 비슷한 발언과 함께 불법 이민자 근절을 약속했다.

바이든을 비롯한 민주당 진영에서는 트럼프가 나치 독일식 혐오 발언을 한다고 비난했으나 우파 진영에서는 개의치 않았다. 미 CBS방송이 공화당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해당 발언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강한 리더' 이미지 만들어

17일 영국 BBC는 그동안 온갖 과격 발언과 돌발 행동을 반복했던 트럼프가 역대 최고령 대통령으로 불리는 바이든보다 활기찬 이미지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올해 82세인 바이든보다 겨우 4세 젊지만 바이든의 건강을 끊임없이 공격하며 자신의 나이에 관심이 쏠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이오와주의 트럼프 지지자 중 한명은 BBC를 통해 트럼프가 사업가 출신이라며 "미국을 경영하기 위해 또 다른 정치인이 나설 필요 없다. 경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의 후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미지 변화는 이미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중순 시에나대학과 함께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18~29세 유권자 가운데 트럼프 지지 비율은 바이든보다 6%p 높았다. 해당 연령층의 바이든 지지율은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보다 24%p 높았다.

아이오와주 정치단체인 아이오와청년공화당원(YR)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는 23세 메리 웨스턴은 BBC를 통해 트럼프가 연단에서 보여주는 활력을 지적하며, 많은 젊은 공화당원들이 이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 연설하는 방식에 경외감을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웨스턴은 자신이 고등학생이었던 트럼프 재임 당시 주위에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제는 소신껏 말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인기는 그가 지난해 3월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형사 기소를 당하면서 꾸준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 트럼프는 91개 혐의로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했다. BBC는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가 바이든 정부의 기소 덕분에 정치적 박해를 주장할 수 있게 됐고,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위해 결집했다고 전했다. NYT 역시 트럼프의 입지가 공화당 유권자 사이에서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바이든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트럼프로 옮겨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미 USA투데이와 서포크대학교가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20년 대선에서 65%가 바이든을 지지했던 히스패닉 유권자 가운데 올해 바이든을 지지하는 비율은 34%에 그쳤다.
같은 기간 히스패닉 유권자의 트럼프 지지율은 32%에서 39%로 올랐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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