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자본시장 발전과 증권대차거래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22 18:12

수정 2024.01.22 18:12

[특별기고] 자본시장 발전과 증권대차거래
자본시장에서 이뤄지는 증권대차거래는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을 빌려주는 거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 증권은 대여가 아니라 매매의 대상이다.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거래유형에는 되돌려 받는 것을 전제로 빌려주는 대여거래도 활발하다. 기관들 간에 돈을 빌려주는 거래는 물론 주식이나 채권을 빌려주는 거래도 빈번하다.

자본시장에서 자금거래는 돈이라는 동일한 상품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거래참여자가 많다.
정부, 기업, 금융회사는 상시적으로 자금을 필요로 한다. 반면, 증권을 빌리고자 하는 거래는 증권마다 특성이 다르다. 일례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식은 전혀 다른 상품이다. 삼성전자 주식을 빌렸다가 현대차 주식으로 갚을 수는 없다. 상품의 다양성이 높은 탓에 증권대차거래는 참여자도 제한적이다.

이런 거래 특성의 차이 때문에 증권대차시장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 시장으로 발전해왔다. 증권은 상품 간의 동질성이 낮아 투자자의 개별적인 수요 특성이 강조되고, 협의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하다. 증권대차거래가 불특정다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적 규제에 기반하지 않고, 거래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존중되는 장외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이유다.

오랜 기간 증권대차거래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장외시장을 중심으로 거래 단위와 물량이 큰 도매거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소수의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특수 영역이었다. 대중적 인지도도 낮았다. 그러나 증권대차거래는 규모가 상당하다. 이달 기준으로 주식대차잔고는 약 62조원, 채권대차잔고는 약 128조원에 이른다.

최근 공매도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증권대차거래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적법한 공매도를 하려면 주식을 빌려오는 거래가 선행돼야 하므로 공매도와 증권대차거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매도가 증가하면 선행거래인 증권대차거래도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증권대차거래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증권대차거래가 증가한다고 해서 공매도가 반드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21년 이후 공매도와 증권대차거래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낮아지고 있다.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 지난해 11월 6일 이후 하루 평균 약 2500만주의 주식대차거래가 체결되고 있다. 증권대차거래가 공매도 이외의 목적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증권대차거래는 참여자 간의 합의와 계약에 의해 운영되는 사적 영역으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담보비율이나 상환기간 등에 관한 조건은 공적 규제의 적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돼왔다.

다만, 계약마다 다른 수준을 적용하는 것이 번거롭고,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소여서 참가자들이 인정하는 적정 수준에서 시장표준의 형태로 정형화됐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증권대차거래 담보비율은 102~105%이고, 상환기간은 계약에 명시된 기간을 존중한다.

고도로 개방된 금융시장을 가진 우리나라는 증권대차거래에 대해 국제적 표준을 인정하면서 시장을 발전시켜왔다. 또 국내 자본시장에는 해외를 넘나들면서 거래하는 수많은 외국금융회사와 기관 투자자들이 시장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담보비율이나 상환기간에 대해 공적인 규제를 통해 제한을 강화할 경우 국내 자본시장은 해외자금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외면받을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외국사들보다 불리한 상황에서 대차거래를 체결해야 하므로 금융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도 있다. 규제 강화보다는 국제표준을 존중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으로 판단된다.


증권대차거래가 효율적인 자본시장 구축을 위해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이해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 발전을 위한 규율체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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