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러시아-우크라, 전쟁포로 수송기 추락에 '진실공방'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26 05:00

수정 2024.01.26 05:00

러시아, 우크라군이 우크라 포로 65명 탑승한 수송기 격추했다고 주장
우크라 측은 피해 관련 정보 없다고 밝혀 "러시아 영공에서 발생한 사건"
美는 아직 추가 정보 없다며 어느쪽 편도 들지 않아. 유엔 안보리 논의 예정
서방에서는 음모론 나와...러시아의 자작극 가능성 제기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벨고로드주 코로찬스키 지역 야블로노보 마을 인근에서 러시아 조사 당국 직원들이 추락한 일류신(IL)-76 수송기 잔해를 조사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벨고로드주 코로찬스키 지역 야블로노보 마을 인근에서 러시아 조사 당국 직원들이 추락한 일류신(IL)-76 수송기 잔해를 조사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러시아 상공에서 우크라 전쟁 포로를 실은 수송기가 추락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의 진실 공방에 불이 붙었다. 러시아는 우크라가 대공 미사일로 러시아 영공을 지나는 수송기를 공격했다고 주장했으며, 우크라는 러시아 영토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등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 포로를 이용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산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격추 가능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 등 외신들은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국방부를 인용해 우크라 포로들이 탑승한 일류신(IL)-76 수송기가 러시아 벨고로드주 코로찬스키 인근에서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기체에는 우크라 포로 65명과 러시아 승무원 6명, 호송 병력 3명을 포함하여 74명이 탑승하였으며 전원 사망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레이더로 추락지점에서 약 80㎞ 떨어진 우크라 하르키우주 립치 지역에서 대공 미사일 2기 발사를 탐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군이 미사일로 자국 포로가 탑승한 수송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사망한 포로들이 24일 오후 콜로틸롭카 국경 검문소에서 러시아 포로들과 교환될 예정이었다면서 우크라 지도부가 포로 교환 및 이송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같은날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가 "또 다른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며 "고의적이고 의식적인 공격이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하원의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국방위원장은 문제의 수송기가 미국산 패트리어트 또는 독일산 IRIS-T 대공 미사일 3발에 격추당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CNN은 IRIS-T의 사정거리가 20km에 불과하지만 패트리어트의 사정거리(약 161km)라면 공격 자체는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에 무기를 지원하면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카르타폴로프는 러시아와 우크라가 24일 각각 포로 192명을 서로 교환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고로 중단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크라가 포로 교환을 방해하고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 (수송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25일 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22일 폴란드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서 촬영된 패트리어트 대공 미사일 포대.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2일 폴란드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서 촬영된 패트리어트 대공 미사일 포대.AFP연합뉴스

"러시아 영토에서 일어난 일" 사실 규명부터 해야
우크라군은 추락 소식이 알려진 뒤 약 8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성명을 내고 "추락한 러시아군의 IL-76 수송기에 무엇이 실려 있었는지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포로 교환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우크라군은 "우리는 지난번 포로 교환 때와 달리 벨고로드 주변 지역의 항공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번 추락이 "우크라의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러시아의 계획된 행동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크라군은 러시아가 최근 러시아 국경에서 약 30km 떨어진 하르키우주의 하르키우를 겨냥해 맹공을 퍼부으며 국경 인근으로 무기를 실은 수송기를 자주 보냈다고 설명했다. 하르키우 시가지에서는 23일에도 러시아의 맹포격으로 10명이 사망했다.

우크라군은 성명에서 "최근 러시아군의 포격이 강화되면서 벨고로드 비행장으로 향하는 군용 수송기가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크라군은 벨고로드와 하르키우 방면을 포함하여 영공 내 테러분자 위협을 제거하고 수송 수단 파괴를 위한 조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24일 저녁 연설에서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아주 힘든 하루"였다며 "최대한 명확한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러시아 영토에서 벌어졌다"고 밝혔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인들이 우크라 포로들의 인명, 그리고 가족들과 우리 사회의 감정을 갖고 장난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 정보 당국이 나서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국제적인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알렸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벨고로드주 코로찬스키 지역 야블로노보 마을에서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이날 추락한 수송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벨고로드주 코로찬스키 지역 야블로노보 마을에서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이날 추락한 수송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서방은 일단 중립. 음모론도 새어 나와
미 백악관의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4일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격추 주장에 대해 추가 정보가 있느냐는 질문에 "추가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보고서를 봤지만 이에 대한 진위를 확인할만한 입장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커비는 "확실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더욱 분명하고 많은 정보를 모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CNN과 영국 BBC를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의 주장에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2014년 말레이시아항공 17편(MH17)이 우크라 친러 반군 점령지에서 발사된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한 사건을 언급했다. 이어 러시아가 지금까지도 해당 사건과 연관성을 부인중이라고 지적했다. BBC는 일단 러시아가 추락한 수송기에 우크라 포로가 탑승했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우크라 매체인 우크라인스카야 프라우다는 24일 사건 발생 초기에 군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군이 러시아 S300 대공 미사일을 실은 IL-76 수송기를 격추했다고 보도했다가 이후 정정했다. CNN은 실제로 우크라 포로가 추락한 수송기에 탑승했다면 러시아 정부가 일부러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우크라군이 자국 포로를 공격하도록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일부 전문가들은 앞서 자국 영공에서 우크라의 무인기(드론)를 자주 격추했던 러시아군이 적의 대공미사일을 탐지하고도 격추하지 못했다는 점에 의혹을 제기했다.

게다가 포로 65명이 탑승한 수송기에서 이를 통제하기 위한 러시아 호송 병력이 3명밖에 없었다는 점도 의문을 자아낸다.
러시아에서 전쟁 포로로 생활했던 우크라인 막심 콜레스니코우는 24일 소셜미디어 X(엑스)에 글을 올려 그가 러시아 브랸스크에서 벨고로드로 이송됐을 때 수송기에 우크라 포로 50명에 러시아 군사경찰 20명이 탑승했다고 주장했다.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인근 주코프스키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일류신(IL)-76 수송기.타스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인근 주코프스키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일류신(IL)-76 수송기.타스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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