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고려거란전쟁이 증권가에 주는 교훈

김찬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28 19:08

수정 2024.01.28 19:08

김찬미 증권부
김찬미 증권부
고려거란전쟁에서 가장 뼈아픈 패배로 꼽히는 전투가 있다. 강조의 '삼수채' 전투다. 비밀무기 '검차'를 준비한 강조는 초반 연전연승을 이어갔다. 전쟁이 허무하게 끝난 것은 한순간이었다. 승리에 취해 한가롭게 바둑을 두며 방심한 결과 이 전투는 3만여명의 군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안일함'이 낳은 결과였다.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증권사들의 금융사고를 보면 강조의 삼수채 전투가 떠오른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험은 무시하는 모습 말이다.

실제로 약 4년 전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시 A증권사는 내부통제 기준이 없어 상품 출시에 대한 적정성 검토가 부족했음에도 펀드를 판매했다. B증권사는 신규 거래 운용사에 대한 기본적 자격사항도 확인하지 않고 상품을 팔았다. 당시 이 사태는 2조원 넘는 피해액을 낳았다.

문제는 4년 전과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난해 증권사들의 금융사고는 14건, 손실 규모는 668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증권사 임직원이 업무상 얻은 정보를 활용해 부당이익을 취한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리스크 관리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인지 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증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한 교수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 미리 돈과 사람을 투자하지 않는다"며 "금융사고가 터졌을 경우 땜질식 처방으로 끝나기 때문에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나타나긴 어렵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 5년간 리스크 관리를 위한 증권사들의 내부감사 관련 예산은 전체의 0~2%에 불과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한목소리로 '리스크 관리'를 강조했다. 수익보다는 내부통제를 강화해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도 올해 표준내부통제기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 공수표는 안 된다. 빈틈에는 언제든 위험이 들어올 수 있다. 리스크관리본부 신설에서 나아가 전문인력을 뽑아 내부감사를 강화해야 한다. 취약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구축하는 대비가 필요하다. 금융당국 역시 증권사들이 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항시적으로 살펴야 한다.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는 성 주변에 독을 바른 쇠침을 배치하고, 타는 기름을 준비해 무기를 불태우면서 40만명의 거란군을 7일간 막아냈다. 철저한 대비는 3000여명에 이르는 군사들의 목숨을 살렸다.
증권가는 이제 '강조'가 아닌 '양규'를 바라봐야 할 때다.

hipp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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