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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일본으로 건너간 비대면 진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01 18:33

수정 2024.02.01 18:33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지난해 규제가 모두 풀린 일본으로 건너가 글로벌 기업과 당당히 붙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대표가 새해 인사를 보내왔다. 청년 최고경영자(CEO)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이제는 미지의 해외시장까지 나서본다고 하니 '새해 인사' 중 가장 흐뭇한 문자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4월 일본 정부는 온라인과 전화 진료, 비대면 복약지도 등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에 초진부터 온라인 진료를 인정하는 특례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1년여 실험을 마치고 이듬해 6월에는 기존에 허용되지 않던 초진까지 영구적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내각에서 결의했다.
지금은 일본 굴지의 기업들과 지자체가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ANA, NTT와 홋카이도 지자체가 공동개발한 앱은 비대면 진료뿐 아니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진단하고 복용 약을 드론으로 배송한다. NTT 도코모가 개발한 온라인 지도앱은 복용 약 수첩관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도 2020년 12월 비대면 의료실험을 시작했다. 의료법을 고친 것은 아니고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작년 5월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낮아지면서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 '초진 금지, 약 배송 금지'로 제한된 시범사업만 허용하다, 지난해 12월 15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이 발표됐다. '초진 허용의 문턱을 낮추자'는 여론에 따라 비대면 진료 대상이 기존 만성질환, 재진환자에서 일반질환, 신규환자로 일부 확대되었고 야간 및 휴일에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졌다. 시범사업 보완방안 시행 이후 일주일 동안에만 진료요청 건수가 5000건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반쪽짜리 비대면 진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를 받더라도 약을 받으려면 약국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약국에 대체약이 없거나 처방전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국내에 '약을 배달하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은 없다. 약사법 제50조 1항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는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1963년 보부상들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전화기도 택배도 없던 시절의 법이다. 디지털 치료제, 인공지능(AI)이 관리하는 혈당, 스마트워치로 측정하는 심전도, 빅데이터가 안내하는 웨어러블, VR 약국, 약 배달드론 등 다른 나라에서 펼쳐지는 헬스케어 세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실제 한국에서의 비대면 진료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비대면 진료 이용자는 1400만명가량이었고, 3700여건의 진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경험자의 62.3%는 비대면 진료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87.9%는 향후 활용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 방문빈도가 잦을수록, 도시보다 읍·면 지역에서 활용의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의 큰 주제 중 하나는 디지털 헬스케어였다. 각국 기업들은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AI, 로보틱스, 사물인터넷 등을 통해 실험실이나 병원 울타리에 갇혀 있던 기술들의 솔루션을 바깥으로 쏟아내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시장은 작년 2453억달러에서 2030년이면 8000억달러로 커져 연평균 18.6%의 무서운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전례 없는 변화의 시대이지만 법과 제도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혁신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또 뒤처진 기술, 그 혁신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대상은 오롯이 국민이다.
새로운 혁신을 뒷받침해 줄 규제혁신이 중요한 이유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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