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결국 엄마 얼굴 보지 못해"...거리 나선 덕성원 피해자들[잃어버린 가족찾기]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05 15:00

수정 2024.02.05 15:00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가 지난1일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덕성원 사건을 알리고 있다./사진=협의회 제공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가 지난1일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덕성원 사건을 알리고 있다./사진=협의회 제공

[파이낸셜뉴스]"세 살 무렵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 등에 업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몇 년 뒤 덕성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 이후 엄마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지난 1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덕성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안종환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협의회)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말했다.

제2의 형제복지원이라 불리는 덕성원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상 규명을 통해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암매장,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곳에 수용됐던 피해생존자는 형제복지원·영화숙·재생원 등 부산 부랑인시설과 마찬가지로 상습적인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덕성원은 1952년 동래구 중동에 정착했고, 1996년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한 뒤 2000년에 폐원한 아동보호시설이다. 아직까지 덕성원에 대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은 수십여년만에 모였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 협의회에 접수된 덕성원 관련 피해 건수는 40여건이다.

안 대표는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형제복지원과 재생원, 형제원 등의 피해자들이 본인들의 피해를 용기 있게 말하고,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당시 겪은 피해에 대해서 비로소 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인 심모씨는 수용시설의 참혹한 삶이 어린 시절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씨는 "덕성원 재단은 어른이 돼 덕성원을 나간 원생들을 상대로 사기까지 쳤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몇천만 원, 많게는 몇억원씩 빌린 뒤 아직 갚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데, 재단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호위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이제라도 국가와 부산시가 이런 문제를 살피고, 철저히 조사해서 어린아이들이 겪었던 한을 꼭 풀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진실 규명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사 권한을 가진 진화위에서 덕성원에 대한 직권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위는 내년 5월 만료될 예정인 활동 기간이 1년 연장됐다고 밝힌 바 있다. 접수사건 2만 92건 중 처리 완료된 사건이 53%에 불과해 미처리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서다.
이들은 현재도 미처리 사건이 많은 상황이라 조사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덕성원 사건을 직권조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는 게 협의회의 설명이다.

이들은 정부에 피해 입증을 위한 지원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안 대표는 "덕성원에 거주했던 아동들의 자료를 적극 발굴해 달라"면서 "덕성원 피해자들의 사건이 진화위에 접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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