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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 항소에 저당잡힌 삼성의 ‘초격차’

김동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06 18:37

수정 2024.02.06 18:37

김동호 기자
김동호 기자
'검찰 기소 후 1252일, 약 3년 5개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은 기간이다. 이 회장은 107번의 재판 중 경제사절단 동행 등을 제외한 96번의 재판에 참석했다. 출석률은 89%에 달한다.

이 회장은 지난 5일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마음이 홀가분해졌을 법 하지만 법원을 떠나는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직 '법정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구속된 2017년 2월부터 무려 7년간 '사법 족쇄'에 묶여 있었다. 반도체 매출 1위, 스마트폰 출하량 1위 등 '초격차'의 대명사로 불리던 삼성이 1위를 빼앗기는 위기를 겪는 가운데, 만약 검찰의 항소가 이뤄지면 이러한 공전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삼성의 '잃어버린 7년'은 뼈아팠다. 삼성이 소위 '빅딜'로 부를만한 대형 인수합병(M&A)은 지난 2017년 전장·오디오 기업 하만이 마지막이다.

반도체 업황 불황이 시작된 뒤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해 위기 극복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사법 리스크 족쇄의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다. 글로벌 반도체 수장들과 인공지능(AI) 업계 리더들은 올 초 미국에서 열린 CES 2024에 참석해 글로벌 트렌드를 분석하고 네트워크를 넓히는 시간을 가졌지만, 이 회장은 선고를 앞두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한국을 찾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이 회장과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선고 일정 등 변수로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이 회장이 짊어진 사법 리스크는 경쟁국에게만 이득이 될 것이 자명하다. 2020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서 이 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이끌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1심 선고와 관련 "국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의 위상에 비춰서 이번 절차가 소위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사실상 종결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회장은 결심 공판에서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AI 기술 선점과 반도체 글로벌 패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며 경영에만 매진해도 어려운 시기다.

검찰은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자존심을 위해 삼성의 '초격차'를 볼모로 잡아서는 안된다.

hoya022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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