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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년만에 내 돈 들고 튄 아내", 범죄일까 아닐까[최우석 기자의 로이슈]

최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2 16:03

수정 2024.02.12 16:03

법률상 배우자는 사기, 횡령, 공갈에도 처벌 못 해
장애인 대상 재산범죄는 법률개정으로 친족상도례 적용 안돼
【서울=뉴시스】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경기도에 사는 40대 남성 A씨는 또래보다 일찍 집을 장만했다. 마흔을 넘기고 태국 여성 B씨와 국제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1년만에 B씨는 A씨 명의로 대출 1억원을 받게 한 후 그 돈을 들고 태국으로 출국했다. A씨는 "싹싹한 성격에 어머니에게 잘해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B씨를 ‘사기’, ‘횡령’ 등 혐의로 형사고소 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B씨를 형사처벌할 수 있을까.

법조인들은 친족간 재산범죄 의뢰를 받으면 '친족상도례' 적용 여부를 따진다.
친족간의 재산 관련된 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제기할 수 있는 범죄에 관한 특례를 ‘친족상도례’라 한다. 친족간 재산범죄에 대해 친족관계라는 특수 사정을 고려해 처벌면제 등 특별 취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절도죄, 사기죄, 횡령죄, 공갈죄, 배임죄, 장물죄가 대표적이다. 정식 혼인관계인 남편이 아내에게 사기를 치거나 공갈을 해도 형사처벌 되지 않는다.

'아내가 내 돈 횡령', 형사처벌 못해
A씨는 억울하다. 본인 명의로 1억원 가량의 돈을 대출 받았는데, B씨는 그 돈을 조금씩 빼돌린 후 태국으로 잠적했다. 결혼 후 잠적까지 걸린 기간은 약 1년이다. A씨는 B씨가 애초에 사기 치려고 결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A씨는 노모와 함께 변호사를 찾았지만, ‘친족상도례’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B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해 봐야 B씨의 태국 재산을 집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회신도 받았다. 현행 친족상도례로는 A씨와 같은 케이스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형법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일본의 형사법도 유사하다.

개정 여론도 높아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친족상도례는 가부장제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가부장이 모든 가산에 대한 지배 및 통제권을 가지던 시절 적용되던 법이 현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산 유형과 가치가 과거와는 달라졌고, 가족 구성원이 가부장의 권위 아래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거액의 사기나 횡령에도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를 지적해왔다.
결국 A씨는 배우자 B씨를 형사고소를 제기했으나 각하결정을 받게 됐다. 다툴 여지가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판단을 법원으로부터 받은 셈이다.
앞서 이러한 비판에 따라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학대 범죄 중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게 개정돼 2022년 1월부터 처벌하고 있다.

wschoi@fnnews.com 최우석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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