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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기업 역차별법 될라"… 핵심 '사전지정제' 재검토 수순 [길 잃은 플랫폼법]

이창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2 18:29

수정 2024.02.12 18:29

외국기업 지정 가능성에 美 반발
정부, 세부안 발표 무기한 연기
국내 대기업에만 규제 적용 유력
본래 취지 실종 우려 목소리 커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추진에 제동을 건 지점은 법안 핵심으로 여겨지던 '사전지정제'다. 독과점행위에 대한 처벌대상으로 지배적 위치의 기업을 미리 지정하는 내용이다. 선제적으로 불공정행위 차단에 나서겠다는 취지와 달리 업계와 학계에서는 우려가 앞섰다. 플랫폼 시장 선두주자인 미국에서조차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잇따르며 법안은 전면 재검토 수순을 밟게 됐다.

12일 기준 플랫폼법은 세부내용 발표를 기한 없이 미뤄둔 상태다. 특히 골자인 사전지정제는 학계와 업계 의견을 재차 수렴하는 등 원점 재검토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후퇴나 완전 폐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설명이지만, 사실상 법안의 원래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논점인 사전지정제는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이용자 수로 사전에 '지배적 사업자' 기업을 선정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등 4가지 행위에 대해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특히 플랫폼 사업의 경우 이용자 측면에서도 쉽게 독과점에 가까운 사용빈도를 체감할 수 있는 만큼 현행 법체계보다 강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사전지정 수준의 법체계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전지정 대상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국내 대기업들이 오히려 해외기업들로부터 역차별을 당할 것이라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당장 '직구 1위'로 떠오른 중국 알리익스프레스 등과의 경쟁에서 국내 사전지정 기업들의 운신 폭이 현저히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미국 현지에서조차 플랫폼법을 두고 "중국 기업만 키워주는 규제법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사전지정 대상 선정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는 중이다. 공정위는 매출, 시장점유율, 사용자 수 등을 고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세부수치는 여전히 '비공개'다. 지정대상이 사업자 전체인지, 단일 플랫폼에 대한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기준에 따라 카카오나 구글 등 기업이 들어갈 수도, 유튜브·카카오T 등 일부 서비스로 제한될 수도 있는 셈이다.

세부내용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며 시장의 혼란은 커졌다. 넷플릭스 등 외국 플랫폼도 사전지정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미국 현지에서까지 반발이 터져나왔다. 쿠팡 등 일부 서비스가 제외될 수도 있다는 의견에는 소상공인 측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 법안 수혜자로 여겨졌던 중소형 벤처기업에서까지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국내 대기업이라는 방파제가 줄어들며 사전지정제를 피해간 외국 대기업과의 직접적 맞대결이 성사될 위기가 커지면서다.

제재가 필요한 행위 역시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 어렵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 시장에서의 독과점 행위를 기존 시장의 기준으로 판별하기는 어렵다"며 "디지털 호밍 등 독과점으로 보이는 행위가 사실 기업 입장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분석했다.
사전지정제가 기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는 "공정위가 기존에 갖고 있는 수단으로도 알고리즘 조작 등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며 "미래 사업 진출 등에서까지 예비 독과점 행위자로 지정해 감시하는 것은 기존 업체들의 손발을 묶는 셈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방민석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기존 공정거래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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