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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난 소풍서 마주한 노년의 삶…60년지기 첫 '버디 무비'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2 18:35

수정 2024.02.13 08:19

영화 '소풍'의 김영옥·나문희
데뷔 후 처음으로 친구사이 연기
어느날 고향 남해로 함께 내려가
추억 회상하며 삶 나누는 이야기
개봉 첫날 중장년층 관객 몰려와
영화 '소풍'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소풍'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배우 김영옥(86)과 나문희(83)가 주연한 영화 '소풍' 상영관에는 그야말로 40~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다수를 차지했다. '소풍'은 두 여배우가 극중 친구이자 사돈지간으로 나와 자식 때문에 속 끓이고 건강 문제로 고민하는 노년의 삶을 그렸다.

데뷔 후 처음으로 친구 사이를 연기한 성우 출신 '60년 지기' 두 배우에게도 이번 작업은 특별했다. 개봉 전 만난 나문희는 "김영옥과 궁합이 잘 맞지만 지금까지 친구 사이로 나온 적이 없다"며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시어머니였고 '디어 마이 프렌즈'에선 친구 엄마로 호흡을 맞췄다. 죽기 전에 이거 하나 남겨놓게 돼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기뻐했다.

■“소풍가는 마음 이해...끝까지 열심히 살 것”

'소풍'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아들을 키운 은심(나문희)이 자식 문제로 속을 끓이던 중 갑자기 곱게 차려입고 상경한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금순(김영옥)과 함께 오랜만에 고향인 경남 남해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동창 태호(박근형)를 만나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서로의 사정과 고통에 공감하는 이야기다.


나문희는 "내 나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라서 자신감을 갖고 했다"며 "모든 장면이 다 공감됐고, 연기라기보다 우리 삶을 그냥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얘기했다"고 말했다. 브라운관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한 김영옥은 "나한텐 마지막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연기했다"며 "영화를 찍는다기보다는 우리가 흘러온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는 느낌이었다"며 "(촬영 현장에서도) 김용균 감독이 우릴 내버려두다 (연출자로서) 욕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개입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보곤 먹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김영옥은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운 것은 처음이었다"며 "요양원에 있는 친구가 여기 오지 말고 집에서 죽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고 돌이켰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강 문제에 직면한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무겁게 다가온다. 나문희는 "나이가 들면 살고 죽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하지만 살아있는 한 열심히 살 것"이라고 했다. 지난여름 집에서 샤워를 하다 넘어져 꼼짝없이 드러누워 지냈다는 김영옥은 "'소풍' 찍기 전에 이 경험을 했다면, 연기를 더 잘했을텐데"라며 "당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잖나. 그런데 움직이지 못하면 내 의지로 내 마지막도 선택할 수도 없다. 건강하게 늙는 게 중요하다. 혹시나 같이 소풍 가라는 것으로 받아들일까봐 우려됐는데,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존엄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며 "의학적으로 뇌가 죽었다면 존엄사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게 치명적 불행은 준다"고 했다.

영화 '소풍'의 김영옥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소풍'의 김영옥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소풍'의 나문희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소풍'의 나문희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이 들었지만 늙음 늘 의식하지 않아"

쾌활한 성격에 입담도 좋은 김영옥은 명실공히 현역 최고령 여배우다. 윤여정(76)은 최근 롤모델로 김영옥을 꼽기도 했다. 경력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일단 '최고령'이라는 수식어는 빼달라고 했다. "늙었지만 늙음을 늘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뇌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안 늙는다"고 했다. 김영옥은 또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교적인 성격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활 태도를 언급하며 "젊은 시절부터 뭐든 넘치지 않게 했고, 건강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3, 4층에 살 땐 아예 엘리베이터를 안타고 계단을 오르내렸고 7층에 살 때도 걸어서 다니려고 노력했다." 결혼 후에는 워킹맘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는 그는 "어떻게 보면 그게 내 건강 비결이다. 주위에 보면 너무 팔자 좋은 사람이 치매 걸리고 그러던데 나는 너무 바빠서 치매 걸릴 새도 없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차분한 성격의 나문희는 활동의 원동력으로 "마음과 몸의 운동"을 꼽았다. 그는 "눈이 살아있어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눈 운동도 아침저녁으로 한다"며 "기도도 열심히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귀가하면 자전거 타는 방에서 석양도 보고 까치도 보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운동한다. 또 때때로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도 하고, 버스도 탄다"고 부연했다.

두 사람은 또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문희는 극중 은심처럼 자식에게 한없이 퍼주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며 "내가 기준을 세우고 그걸 지켜야 한다"고 했다. 김영옥 역시 "(아프면) 돈도 가족도 소용없다.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건강은 될 수 있는 한 스스로 챙겨야 한다.
(가족이나 자식을 위해) 너무 나를 희생하지 말고, 오히려 건강을 유지하는 게 자식과 나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또 젊은 사람들에겐 "나는 인간이라면 다 해보라는 주의"라며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혼만 용단이 아니라 끝까지 사는 것도 용단"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소풍'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소풍'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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