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2 18:41

수정 2024.02.12 18:41

윤경현 증권부장
윤경현 증권부장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으로 국내 증시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들이 투자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주가가 장부가를 밑도는 저PBR주의 몸값을 높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후 증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저PBR주로 꼽히기만 하면 주가가 껑충 뛰는 바람에 너도나도 저PBR주라고 주장하며 관련 기사에 회사 이름을 넣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순자산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PBR이 1배 미만인 경우 해당 기업은 존속하는 것보다 부채를 갚고 청산해 남은 자산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낫다는 뜻도 된다.
통상 주가수익비율(PER)과 함께 주식 투자자들이 제일 관심을 갖는 수치 가운데 하나다.

이달 7일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서 PBR이 1보다 낮은 종목은 모두 1118개에 이른다. 전체 상장사의 40%를 넘는다. 10년 전과 비교해 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2014년에도 PBR 1배 미만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43%를 차지했었다. 현재 국내 증시의 PBR은 코스피시장이 0.95배, 코스닥시장은 1.96배다. 전체적으로는 1.05배에 불과하다. 선진국(3.10배)은 물론 신흥국(1.61배)에 비해서도 저조한 수준이다.

최근의 주가 상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시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구체적 실행방안이 제시돼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긍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랜 기간 고질병처럼 국내 증시를 괴롭혀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희망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상장사에 기업가치 개선계획 공표 권고 △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주요 투자지표를 비교 공시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 담길 전망이다.

'한국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벤치마크인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기대만큼 한계도 뚜렷하게 보이는 이유다. 단순히 PBR 배수나 배당성향 등 '눈에 보이는 수치'에 목을 매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일례로 올해 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태영건설은 PBR이 겨우 0.12배다. 지배구조개선을 비롯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술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 기업의 이익 체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주주환원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 역시 "기업 실적과 같은 지속가능한 부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상장기업들이 배당 확대나 자사주를 매입·소각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외 교역비중이 높고, 시클리컬(경기순환적) 산업의 비중이 커 기업의 이익 변동성이 심하다.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고,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상속·증여세 완화도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실제 한국의 상속세율은 최대 60%(경영권 지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주주가 주식을 팔아 상속세를 납부하면서 관련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속세 절감을 위해 주가를 등한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주가 하락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의 몫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일부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그쳐선 곤란하다.
기업의 이익 성장, 자본시장 활성화가 선순환 구조로 이어져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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