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피플일반

과당중독 [기자수첩]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5 14:57

수정 2024.02.15 19:15

과당중독 [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헬스장에서 퍼스널트레이닝(PT)을 등록하는 이유는 뭘까. 체계를 잡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혼자 만의 의지로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 외부의 강제성을 동원하겠단 뜻이 크다. 그런데 코치가 탕후루나 먹으러 가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노발대발하며 항의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일이 우리 기업들에게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 바로 ‘사외이사’ 제도다. 사외이사는 외부인사로서 주주 이익과 의사에 반하는 독단적 이사회 결정을 견제하라고 둔 장치다. 하지만 나태하거나 고집스런 회원을 다그치기는커녕 동조하거나 과식을 권장하는 코치 같은 사외이사들이 판을 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상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도입됐지만 26년이 지난 지금도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사회 내에서 사외이사 의무 비중이 꾸준히 높아져왔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사외이사가 경영진 결정에 손을 번쩍 들고 반대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다행이다. 되레 '영합'하기도 한다. 최근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 7명 전원은 사내이사들과 함께 캐나다에서 ‘호화판 이사회’를 열어 경찰에 입건됐다. 들키지 않았을 뿐 유사한 상황들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 번 앉으면 일어나기 싫은 자리여서다. 회의 한 번에 수백만원, 연봉으로 따지면 억대를 통장에 넣어주니 본업보다 더 많은 현금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 해외출장, 법인카드, 골프회원권 등 혜택도 다양하다.

심한 경우 ‘우리 회장님이 뽑아줬다’며 정신까지 지배당한다. 바른 소리를 하겠다는 의지는 무력하기만 하다. 여기서 몸집이 더 커지면 이사회를 쥐고 흔드는 ‘내부자’가 되고, 끈끈해진 연은 임기(최대 6년)가 끝날 때쯤 다음 회사로 ‘이직’할 든든한 동아줄이 된다.

전문성 향상은 늘 따라붙는 과제다. 교수, 변호사, 전직관료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해당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 없이 학문적·법적·정치적 시각에서 안건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200에 속한 162개사, 사외이사 655명 가운데 72%가 산업 전문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생태를 잘 아는 기업가 출신이나 독립성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인을 선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 건강을 관리하는 코치들이 달콤함에 중독되지 않을 판을 짜야 한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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