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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제6의 물결, 순환경제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8 18:51

수정 2024.02.18 18:51

임상준 환경부 차관
임상준 환경부 차관
인공지능 카메라의 눈은 빠르면서도 정확했다. 초당 3m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컨베이어에서 이물질을 선별해 내는 자동화도 놀라웠지만, 기존 선형경제(Linear Economy)에서는 끝단이던 '폐기물'이 이곳 U자형 공장에서는 생산의 '시작'인 것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순환경제를 지향하는 예비 유니콘기업 수퍼빈의 얘기다.

인류사에서 급격한 발전이 이뤄진 지난 200년간 산업혁명에서 정보통신혁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번의 물결이 있었고, 학자들은 향후 인류 역사를 변화시킬 여섯 번째의 물결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를 꼽는다.

자원을 채취(take)하여 제품을 생산(make)하고 소비(consume)한 후 미련 없이 폐기(dispose)하는 선형경제와 달리 순환경제는 공급 측면에서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전제로 물건이나 자산을 짧고 빨리 순환시켜 그 잠재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폐기물·환경 대책에 자주 언급되는 3R(Reduce, Reuse, Recycle) 같은 환경부하 저감을 위한 노력에 그치지 않는다.
즉 순환경제는 지속가능성과 이익창출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야심 찬 경제모델이다. 단순한 재활용(Recycle)과는 차이가 크다.

지하자원은 그간 인류의 성장을 이끌어 온 기둥이었지만 제6의 물결에서는 더 이상 성장의 연결고리가 되기 어렵다. 자원위기, 기후위기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상황에서 순환경제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액센츄어와 맥킨지는 순환경제 구축으로 2030년까지 세계 탄소배출량이 48% 감축되고, 4조5000억달러(약 6000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연합(EU)에서만 1조8000억유로(약 2600조원)의 경제적 이익과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후위기의 대응과 더불어 향후 성장의 돌파구는 순환경제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인 셈이다.

세계는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EU는 203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재생원료를 30% 이상 사용하도록 했다. 심지어 유럽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2025년부터 폐식용유, 사탕수수 등을 활용해 생산한 바이오 항공유를 2% 이상 급유해야 한다.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재활용 자재 비중을 50%까지 높이고, 맥도날드와 에비앙은 2025년까지 모든 포장용기를 재활용 또는 재생가능한 자재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기업들도 바빠졌다.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스마트폰과 태블릿 기기에 100% 재활용 플라스틱만 쓰고, SK지오센트릭은 일명 도시유전, 도시광산 역할을 하는 플라스틱 재활용공장을 2025년까지 완공한다.

순환경제의 흐름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선택이 아니다. 앞으로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수출길이 막히고, 바이오 항공유가 없으면 하늘길이 막힌다. 순환경제는 국경을 넘을 '경제 여권(passport)'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자원전쟁 속에서 우리가 자원안보를 강화할 기회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을 제정, 올해부터 시행한다. 가치가 높은 폐기물을 순환자원으로 지정하여 원료로 적극 이용토록 하고, 순환경제 규제샌드박스를 신설해 전에 없던 혁신기술이 시장에서 사장되지 않도록 규제를 면제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골대는 옮겨졌다. 하지만 아직 기업들의 부담은 크고, 갈 길은 멀다.
양질의 폐자원 인프라 구축, 재활용 대체기술 개발, 규제혁신을 통해 순환경제를 뒷받침하는 일이야말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국정목표에 부합하는 책무일 것이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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