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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잘하면 사고 나도 책임감경" 은행장들 '내부통제' 언급 늘어난 이유 있다

김나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20 15:27

수정 2024.02.20 15:27

"내부통제 관리의무 소홀하면 CEO 제재"
7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법 시행 앞두고
금융지주 회장·은행장 "내부통제 강화하라" 당부
평소 상당한 주의 다했을 경우 책임 감경·면제
책무구조도 작성 첫 타자 은행·지주
외부 컨설팅 받으며 초안 마련 분주
지난 2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맞춤형 기업금융 은행장 간담회에서 이승열 하나은행장(오른쪽 세번째), 이재근 국민은행장(오른쪽 네번째) 등 시중은행장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맞춤형 기업금융 은행장 간담회에서 이승열 하나은행장(오른쪽 세번째), 이재근 국민은행장(오른쪽 네번째) 등 시중은행장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책무구조도 예시. 그래픽=금융위원회 제공
책무구조도 예시. 그래픽=금융위원회 제공
[파이낸셜뉴스]오는 7월 개정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시행을 앞두고 은행장들의 내부통제 공개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사고 발생 시 관리조치를 소홀히 한 임원들은 신분제재를 받지만 "평소에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경우 책임을 감경·면제받을 수 있다"라는 단서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장이 금융사고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통제할 수 없는 만큼 평소 내부통제 관리를 잘했을 경우에는 책임을 면해주는 것이다. 은행과 금융지주는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규정한 '책무구조도' 초안 작성을 위한 컨설팅을 실시하는 동시에 금융당국과 소통을 통해 업계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은행장, 금융지주 회장들은 대내외에 '내부통제 강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당장 은행장들의 신년사에서 공통적으로 내부통제가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다양한 리스크 요인에 대한 신속대응체제를 구축하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정교한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과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사기 예방체계 강화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내부통제 강화를 올해 핵심과제로 지목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기술 발전으로 기존에는 경험하지 못한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면서 "시스템, 프로세스 전반을 철저히 점검해 안정적인 금융거래를 지원하고 금융사기로부터 고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금융그룹도 신년 메시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내부통제 강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올 한해도 엄격한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하에 내실과 협업을 기반으로 업(業)의 경쟁력과 글로벌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내부통제를 언급했다.

긴급 점검회의 형식으로 임직원에게 내부통제 관리를 당부하는 곳도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일 '고객중심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과 고객경영 관련 부서 책임자에게 "사회적 요구와 트렌드 변화에 따라 사건사고도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며 "경영진은 정해진 규제 준수뿐 아니라 사회적 흐름을 먼저 읽고 해석하는 전략 수입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중은행 전환을 신청한 대구은행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외부 준법감시인 선임 △생체인증시스템 도입 △내부통제 전담팀장 제도 운영 △그룹 내부통제 시스템 전산 구축 등의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강력한 내부통제 체계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CEO의 내부통제 언급이 잦아진 건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에 따른 CEO 사법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오는 7월 3일 시행되는 개정법에 따르면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위반한 임원에게 신분제재를 부과된다. CEO에게 금융사고 '고유의 자기책임'을 묻는 것이다.

다만 평소에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CEO는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감경·면제받을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원의 언급이 부쩍 잦아진 데는 개정법 시행 영향도 있다"면서 "예측 불가한 금융사고 발생에 따른 CEO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이라고 짚었다. 최근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등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 임직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은행과 금융지주들은 책무구조도 초안 작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임원별 내부통제 담당업무를 부과해 내부통제를 '내 일'로 인식하고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하는 책임지도(responsibilites map)다.

국민은행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 1월부터 7월까지 내부통제 제도개선 및 책무구조도 작성을 위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지난 2022년말부터 책무구조도 도입을 준비해온 신한은행은 올해 전산시스템까지 갖출 계획이다.

영국의 책임지도 모델을 벤치마킹한 신한은행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컨설팅 협업 중이다.

우리금융과 지주에서도 각각 컨설팅 업체와 로펌 자문을 받아 지난해 9월부터 책무구조도 초안을 작성하고 있다.

금융권 내 책무구조도 마련 '첫 타자'인 은행들에 대해서는 금융당국도 실무작업반 등을 통해 협의 중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은행연합회 및 금융감독원 내 실무작업반을 꾸리고 은행의 책무구조도 작성을 지원·점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검사국에서도 책무구조도 내용을 향후 점검할 계획이다.
금융위위원회는 은행연합회, 은행업권과 내부통제 제도개선 지원반을 구성해 시행세칙 등에 업권 의견을 반영할 예정이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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