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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집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9 18:24

수정 2024.02.19 18:24

이소영 동화작가
이소영 동화작가
설 연휴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친인척을 만나 신년 인사를 나누었다. 미혼의 조카 한 명이 "월세가 올라 독립했다 다시 집으로 들어왔어요"라고 자신의 근황을 말했다. 헤아려 보니 자유롭게 혼자 살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보다 늘 가족을 그리며 소식을 궁금해하는 어른들이 혼자 사시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사람들은 집이 '나다울 수 있는 공간'으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생활의 안식처이길 바라지만 노인들은 집을 가족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보살펴주는 곳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하다.

2023년 이케아가 실시한 세계 38개국 소비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응답자의 40%는 '집에서 홀로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이는 세계 1위로, 전 세계 평균은 30%가량이었는데 싱가포르 39%, 일본 35%, 미국 31%였다.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웃는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은 전 세계 평균 33%였는데, 우리나라 응답자는 14%로 전 세계 최하위였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가정공동체를 더 중시하고, 이웃과 끈끈한 정을 나누는 사회라는 인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가족애'라고 한다. 사극이나 액션물, 히어로물 등 장르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가족애가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어서 시청자들은 강렬한 감동을 받고 공감하며 다시 K드라마를 찾아 본다고 한다. 이를 보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애를 꿈꾸며 집이라는 공간에서 이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애는 있는데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 홀로 쉬는 시간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은 개인 중심적이어서 집에서도 개인 간의 관계가 더 개방적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인 데 반해 동양은 공동체 중심이어서 가족 구성원 간에 어르신이나 가장(부모)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중요하게 여기고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족 또는 친족의 성원들이 모두 일대일의 동등한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항렬(行列), 장유(長幼), 남녀(男女) 등의 구별에 따라서 각기 경중이 다른 자격으로 공동과제에 참여한다.

우리나라의 집에는 개인은 가족에 속하고, 가족이 잘 유지되면 사회가 안정되고, 사회가 안정되면 국가가 안정된다는 철학이 내면화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니까,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하는 강요된 의무를 지니고 수행 여부의 잘잘못을 평가받는다. 따라서 집에서 일어나는 활동인 육아, 요리, 청소, 인테리어 등을 '일'로 간주하여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즐겁게 잘하던 일도 누군가 평가를 하면 내적 동기가 감소하고,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러니 가족 간의 소통을 포기하고 휴식만 추구하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집은 본래 안전하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소통이나 놀이,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면 집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려 면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집이란 공간은 거울처럼 사람들을 보여준다고 한다. 2024년 우리나라의 혼자 사는 집 증가는 미래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의 지표일까 봐 걱정이다.
집의 본래 면목을 지키려면 가족애를 강요하기보다 나이가 어려도 개인의 의사와 공간을 보장하며 지지해 주고, 나이가 많은 가족이 소외되지 않도록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이소영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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