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칼럼일반

[정상균 칼럼] 낙타 쓰러뜨리기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9 18:26

수정 2024.04.08 16:48

'무능 국회'에 국민 실망
불체포 포기·세비 반납 등
특권 철폐 흐지부지 안돼
정상균 논설위원
정상균 논설위원
50일 후 국회의원 300명이 새로 선출된다. 제22대 국회다. 4년 임기의 국회의원이 되면 180여가지 특권을 갖는다. 대표적인 게 이렇다. 국회의원은 범죄를 저질러도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 직무상 발언이 거짓말, 근거 없는 막말이어도 면책된다.
구속돼 의정활동을 하지 않아도 월급(세비)을 받는다. 국회의원 1명의 연봉은 올해 1억5700만원(세전), 월급으론 1300만원 정도다. 수당과 입법활동비, 800만원 정도의 명절휴가비 등이 주요 항목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봉과 별개로 매년 1억원을 문자메시지·우편 발송, 차량 유류비, 인쇄비, 야근 식대 등 사무실 운영경비로 받는다. '과잉의전'을 받으며 항공 비즈니스석, KTX 특실을 무료로 이용한다. 별도 화장실이 딸린 45평짜리(148.7㎡) 의원 사무실이 제공된다. 국가가 급여를 지급하는 보좌진 9명을 둘 수 있다. 의원 1인당 보좌진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 입법활동과 무관한 수행비서는 물론 지역구 선거운동에 보좌진을 동원한다. 관행이라지만 편법이다. 후원금 제한이 없는 출판기념회를 열면 책 판매금 명목으로 '돈잔치'를 할 수 있다.

정치불신 시대, 우리는 이 정도의 국회의원 특권을 수용할 수 있을까. 탈권위 실용이 중요한 젊은 MZ세대의 부상, 가부장·수직적 조직 질서의 붕괴 등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다. 특권 위에 올라탄 국회의원의 우월한 지위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는 기득권 정치인의 계파싸움, 부패와 몰락을 지겹도록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개혁'이라는 말도 정치인의 상투적 구호다. 거짓과 수사(修辭)에 여러 번 속았으니 진정성을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다시 찾아온 총선, 또 속는 셈 치기엔 분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번엔 달라야 한다. 신인 정치인 한동훈이 꺼낸 5대 정치개혁에 주목한다. 하나씩 따져보자.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소신과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보장한다는 헌법의 취지에 공감한다. 그러나 제1의 특권이 비위 정치인 보호수단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는 데 반대할 국민이 있을까. 불체포 특권 포기는 민주당 1호 혁신안이자 국민의힘의 공천 필수조건 아닌가. 못할 게 없다. 여야가 합의해 개헌(헌법 제44조)하든가 합의 선언으로 일정의 구속력을 갖춰야 한다.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정치자금 수수 출판기념회 금지는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을 개정하든 특별법을 제정하든 입법화로 보여줘야 한다. 범죄로 구속돼 의정활동을 못하는데 매달 세금을 받는 게 합당한가. 수억원의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세금조차 내지 않는 변칙 창구로 전락한 출판기념회는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정치 폐습이다.

국회의원 수를 250명으로 줄이자는 데는 조건부 동의다. 국민의 정치반감을 일부 해소할 수 있겠으나 특권을 그대로 두고 50명을 줄이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보다 먼저 국회의원 1인당 연봉을 평균 가구소득 수준(4인가구 기준 중위소득 연 6480만원)과 엇비슷하게 낮추는 게 특권 철폐 실효성이 더 클 것이다. 국가가 임금을 전액 지급하는 의원 1인당 9명의 보좌진도 절반 이내로 줄여야 한다. 입법에 필요한 보좌관은 전문성 있는 입법보좌관 풀을 만들어 활용하면 된다. 관련 법률을 개정해 보좌진이 선거운동에 동원되지 못하도록 업무범위도 명시해야 한다. 제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 개혁을 위한 시민·전문가 참여형 제3의 기구 출범도 제안한다.

특권 철폐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은 정치개혁의 껍데기만 보아왔고, 빈말을 지겹도록 들어온 터다. 한동훈은 서양 속담을 빗대 "낙타를 쓰러뜨린 마지막 봇짐을 얹겠다"며 "총선 후에도 흐지부지 않겠다"고 했다.
초심을 지켜보겠다. 22대 국회는 정치개혁을 첫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건 신당도 이름값 하길 바란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