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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형 R&D를 위한 연구관리 체계의 혁신 [기고]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21 14:48

수정 2024.02.21 14:48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파이낸셜뉴스] 2001년 출간된 크레이그 에디슨의 저서 '반도체 방패(Silicon Shield)'에서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정치적 압박에 저항할 수 있는 방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60% 이상을 생산하며,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수호신으로 칭하고 있다.

한국은 빠른 추격 전략을 통해 반도체, 이차전지 등 주력 분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지만, 기술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추격 과정보다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의 주장처럼 오늘의 한국은 길이 없는 화이트 스페이스의 경계에 서 있고, 지침이 없기에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스스로 알아내야만 한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도전적·혁신적 연구가 우대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혁신'과 기초·원천기술, 차세대 기술 중심의 투자로 전환하는 '투자혁신'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국가 R&D 사업의 기획, 선정, 평가, 성과확산을 전담하는 기관을 연구관리 전문기관이라 한다.
2022년 기준 주요 17개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관리한 사업 수는 983개, 예산규모는 17조6866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정부 R&D 예산이 도전적·혁신적 연구의 지렛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연구사업관리전문가(PD, PM)를 주축으로 사업을 기획할 때 학회 등 다양한 외부 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기획을 강화해야 한다. 특정 분야 연구집단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 아닌,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업이 되도록 관련 분야 전문가가 기획에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

둘째, 선진형 연구지원 관리체계로 전환이 시급하다. 당초 PD, PM 제도는 연구분야별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의 책임과 권한 하에 기획부터 선정, 평가, 성과활용 등 연구관리 전주기를 담당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공정성 이슈 등으로 대부분 기획 자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고위험·고성과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를 PM으로 임명하고, 과제발굴부터 연구팀 조직, 예산운용까지 전권을 부여하는 점과 대비된다. 우리도 PD, PM의 역할을 평가, 성과활용까지 확대하고 충분한 권한과 책임하에서 수월성 중심의 도전적 R&D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평가 및 관리에 있어서 연구관리 전문기관 간 연계·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범부처 평가위원 풀을 공동 활용해 평가의 수준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요 17개 전문기관간의 정보공유 및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사업단 종료 후 데이터 연계방안을 마련해 귀중한 연구자산이 사장되지 않고, 후속사업이나 사업화 등에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경쟁력이 국가의 존위를 결정하는 기술패권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도전적·혁신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정부 R&D 예산을 집행하는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역할과 혁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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