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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실재에 천착, 조각의 경계 지우다 [Weekend 문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23 04:00

수정 2024.02.23 08:44

세계 최고 조각가의 K-조각
(19) 현대미술 거장 쿠사마 야요이
무한 반복적 연출, 환상의 경험 끌어내
그녀의 우주적 세계관에 대중들도 열광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
거대한 호박
거대한 호박

90세를 넘긴 쿠사마 야요이(95·사진)에 대한 전세계 미술계의 주목은 여전하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쿠사마는 독일 최초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2022년에 개최해 지난해 상반기까지 홍콩 M+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1945년부터 지금까지'(2022~2023)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었다. 2023년 루이비통과의 대규모 협업 또한 미술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 관심을 크게 끌었다.

쿠사마는 1929년 일본에서 태어나 전쟁의 폭력성과 가정 내 가부장적 질서의 억압 및 부조리를 직접 겪으면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정신분열적 징후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시절 강가에 가득 놓여 있던 흰 돌의 이미지 대한 시각적 환상과 눈 앞 모든 시야에 드리워진 '도트(dot)' 무늬에 대한 강박적이고 분열적인 환각은 쿠사마 작업의 초기부터 주요 모티프가 됐다.


1957년 뉴욕으로 가서 197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미국의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시대의 감수성을 공유하며 1960~70년대 '포스트미니멀리즘' 경향의 작가로서 주요 흐름을 견인했다. 쿠사마는 환각과 환상에 의한 강박적 반복 행위로 화면과 사물, 공간 구분이 소멸될 정도의 점들을 가득 채워서 시각적 착란과 심리적 불안을 유도하기도 했다.

매체에 있어서도 회화와 조각 등 매체 특정적 구분이 명확했던 모더니즘 사고에서 벗어나, 형태의 가변성과 유한성을 내포하며 비기념비적 수평성을 강조하는 '부드러운 조각'의 위상을 확장시켰다.

'무한 거울 방-남근 밭'(1965)은 포스트미니멀리즘 경향의 새로운 조각 언어를 선보인 전시 '기이한 추상'(1966)을 통해 당대의 비평적 이목을 끌었다. 쿠사마는 빨간색 도트 무늬가 가득한 천에 솜을 채워 각각의 남근 모양을 잔뜩 만들어서 바닥에 수평적으로 펼쳐 놓았다.

그 둘레에 거울 벽을 세워 공간의 경계를 지워버린 채 빨간 도트로 뒤덮인 남근 형상들이 배경 너머로 무한하게 반복되는 효과를 연출했다. 그 공간의 중앙에는 빨간 옷을 입은 쿠사마가 서서 자신의 신체 또한 거울 방의 무한한 공간 속으로 흩어 놓았다.

천으로 만든 부드러운 조각과 도트 무늬의 강박은 거울의 이미지 반사 효과와 결합해 시각적 착란을 더욱 극대화 했으며, 이는 그의 정신분열증적 경험에 대한 시각적 표상으로 점차 다양하게 전개됐다.

쿠사마 야요이 / 사진=뉴시스
쿠사마 야요이 / 사진=뉴시스

1980년대에 처음 제작한 대형 호박 조각은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쿠사마의 대표 조각 시리즈 중 하나다. 그녀는 호박이나 튤립 같은 익숙한 형태의 식물과 원형의 공, 동물 모형, 인체 마네킹 등 단순화된 입체 오브제를 빈 캔버스처럼 다루며 그 표면에 추상적인 도트를 강박적으로 채워 넣곤 했다.

쿠사마의 도트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늘 겪었던 것으로 일종의 시각적 착란을 일으키는 요소다. 거대한 사물이 평면처럼 납작해지기도 하고, 형태를 지시하는 조각의 윤곽선들이 도트에 덮여 사라지면서 공간의 무한한 증식을 상상하게 한다.

쿠사마의 '무한 거울 방' 시리즈는 건축적 공간을 구성해 놓고 그 내부를 거울로 감싸 중심이 제거된 무한한 우주적 환상을 경험하게 한다.
별처럼 반짝이는 빛으로 거울 방을 가득 채운 쿠사마는 관객들로 하여금 무한한 우주적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환상과 환각의 경험을 제시했다.

이처럼 그녀는 내면의 불완전한 심리 상태를 광대한 우주 공간의 무한함과 연결시켜, 삼차원의 현실 공간을 구분해온 숱한 이분법적 경계에 대해 의심하고 해체하려는 예술적 시도를 해왔다.
그것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지움과 동시에 새로운 결합을 통해 매체에 관한 지각과 경험에 대한 더 큰 도전을 포함한다.

안소연 미술비평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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